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라디오를 켜고 닫혀있던 창문들을 활짝 열었다. 예전 같으면 다시 이불속으로 숨어 들어갔을 시간이다. 그런데 이 집에 온 뒤로는 바뀌었다. 물을 주러 마당으로 발을 옮겼다. 물을 주지 않는 날이면, 그냥 온몸으로 햇빛을 받았다. 게으른 나를 매일 밖으로 끌어내는 건 다름 아닌 햇살 한 줌이었다. 달라진 건 별로 없는데, 이런 작은 일상이 나를 달래는 기분이었다. 잠옷차림 그대로 맞는 직사광선은 기쁨이었다. 마당 있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뿌듯함이었다. 처음엔 멋을 부려 캠핑 의자를 꺼냈다.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좁았고, 벌레도 많았다. 의욕은 금방 꺾였다. 기대하던 그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 서서 눈을 감고 감각을 켰다.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움직이는 햇살을 느끼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를 들었다.
힐링바로 자리를 옮겨와 커피를 내려 마셨다. 힐링바는 텃밭이 보이는 방의 바테이블 자리다. 텃밭 식물들만 보이는 작은 방. 홍은성은 방이 네 개나 되지만, 이 자그마한 방 때문에 계약을 했다. 비좁았던 강남의 원룸에서는 역할이 뒤엉켜 내 속까지 난잡해졌기에 '침실, 작업실, 옷방, 힐링방'으로 각자 역할을 부여해 줬다. 힐링바에서는 하루 종일 멍 때리고 커피를 마셨다. 거실에 따로 식탁을 두지 않고 밥도 여기에서 먹었다. 창문에 걸린 풍경 소리로 바람을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속이 비지 않았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쉼’이라는 걸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나무랐다. 게으르다고 의미 없다고.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멍하니 앉아 있는 이 시간이야말로 나를 치유하고 있다는 걸 몸이 먼저 안다.
어쩌면 나는 이 조용한 자리에서, 나를 쉬게 하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