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못 살았다
역대 가장 더운 기온을 기록한 2025년 여름을 에어컨 없이 보냈다.
산에 가서 에어컨과 냉장고 없이 산다고 하니, 다들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랬다.
"그게 가능해요?"
다들 도전을 안 할 뿐. 가능하지 않을까.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었다.
화들짝 놀라는 그들의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10년 전만 해도 에어컨 없는 집도 있었고, 20년 전만 해도 에어컨 없는 집이 많지 않았던가.
아직도 프랑스에 가면, 에어컨과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이 넘쳐난다. 난 그들의 콧대 높은 지조가 마음에 든다. 편리함을 위해서 다들 문명을 받아들이는데, 새 문명 따위 필요 없다는 그들의 자부심에 존경심이 든다. 그래서 나는 나를 존경하고자 에어컨을 없애기로 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무엇인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태초의 상태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기본을 찾으려면 환경과 상황부터 그렇게 만들어야겠다는 단순함에서 시작했다.
홍은성은 옵션이 없는 집이었기에 시작이 수월했다. 에어컨을 놓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고, 박스 같은 에어컨이 집에 있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조만간 또 이사를 할 건데, 에어컨까지 만들 이유가 없었다. 대신 에어컨도 없이 생활할 건데, 선풍기는 최상으로 두고 싶었다. 선풍기마저 생활감이 가득하면 스스로가 비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발뮤다의 그린팬스튜디오를 샀다. 선풍기만 약 60만 원. 그리고 힐링방, 침실, 작업실, 옷방, 거실 각 인테리어마다 어울리는 선풍기를 두었다. 선풍기도 인테리어 오브제가 되니 켤 때마다 산뜻했다. 다른 이들은 못하는 일을, 나혼자 해내고 있다는 점도 뿌듯했다.
6월과 7월 초에는 살만 했다. 사람들은 밖에서 손선풍기를 들고 다녔지만, 나는 덥지도 않았다. 집도 더웠기에, 그늘로 들어가면 집보다 더 시원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소소한 행복이었다. 평상시에 찬 걸 먹으면 배탈이 생겨서, 더워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카페에 들어가서 피부는 차갑고,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뜨거운 기운은 오히려 시원했다. 겨울날 전기장판은 켜놓고 찬 바람을 맞는 것 같달까. 따뜻한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바깥바람을 받는 노천탕의 상쾌함이랄까.
낮 11시부터는 집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선풍기에서도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선풍기를 이쪽저쪽으로 옮겨가며 바람길에 맞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에 한 번은 카페를 꼭 방문해야 했다. 이게 에어컨 없는 생활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가장 더운 때에 2~3시간만 몸을 피신시켜도 하루의 기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오는 잠깐의 휴식은 가히 최고였다. 최강의 집순이기에 집 밖을 잘 나가지 않는데, 에어컨 없이 사는 덕에 집 밖에서 비타민D도 생성할 수 있었다.
7월 중순이 지나면서 낮보다도 밤이 힘들었다. 집이 1층이었는데, 낮 시간 동안 지열을 품고 있었다. 새벽 5시가 되어야 땅이 식었고, 그쯤 되어야 시원해졌다. 그때까지는 더워서 잠을 들 수 없었다. 아마도 벌레가 많아서 제습기를 틀어놓고 자니, 이게 크게 한 몫을 한 것 같다. 그렇다고 제습기를 끌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집 앞의 24시간 무인카페에 가서 컴퓨터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에어컨이 정말 빵빵했다.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의문이 일었다. '너 정말 에어컨 없이 산다고 말할 수 있니?'
카페에 가서 컴퓨터를 하려고 랩탑을 산 것도 꽤 웃긴 에피소드다.
문명을 거부하겠다던 나는, 결국 에어컨 빵빵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하며 여름을 버텼다.
프랑스인의 지조를 닮고 싶었지만, 한국인의 적응력으로 살았다.
그게 내가 가진 뿌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흔들림 속에서 여름을 내 식대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