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집

by own scene

자체 고립을 택해 이사 온 이천. 처음에는 단순히 자연이 많고 높은 건물이 없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거리에 사람이 없어서'라는 걸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길 위를 잠옷 차림으로 쏘다녀도, 거리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사실, 밖에 사람이 돌아다니지를 않는다. 혼자 있고 싶은 나에게 최적의 곳이었다. 엄마와도 냉전 중이라 나를 방해하는 사람은 일절 없었다. 자연스럽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제야 비로소 자유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부모와 살 때면, 집 밖으로 나가고 해외 여행을 즐겨다녔었다. 내가 외향인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아빠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싫었던 것 같다. 자유를 찾아 나갔었던 것 같다. 이천에서는 집에만 있는 것에 의문을 품으며 내린 결론이다.


이천시에는 만 39세 이하 청년을 위한 무료 수업이 다양했다. DISC, TCI, 버크만, 그림 검사, 에니어그램과 같은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심리 검사부터 글라스 아트, 도예, 떡케이크, 가죽 공예 같은 취미 수업까지 수강했다. 서울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값싸지만 완벽한 행복이었다. 실시하는 검사마다 나를 '예술적이며 창작적인 사람'으로 정의했다. 드러내는 직업이 어울린다는 첨언이 뒤따랐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라, 글은 가끔 브런치로 쓰고 있고, 그렇다면 말로는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날 속에서 문득 도슨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미학에 관심이 많은 내가, 건축과 조경이 있는 정원을 가오픈 기간에 다녀왔다. 마침 거기서 도슨트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지원했다. 정원은 양평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으로는 다닐 수 없어 카셰어링을 알아봤다. 집에서부터 카셰어링 주차장까지 버스로 한 시간이 걸렸고, 거기에서 정원까지 차로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이미 내 마음은 출퇴근을 시작하고 있었다. 교육 기간 동안 매번 차를 빌려 오다녔다. 집부터 정원까지 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데, 버스로 시내까지 가는 추가 1시간이 체력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낭비가 심했다. 결국 계획에는 없었던 중고차를 구입했다. 차가 생기자 네 시간이 걸렸던 정원까지의 출퇴근 시간은 두 시간으로 줄었고, 한 시간이 걸리던 시내까지 거리는 10분으로 줄었다. 이천 생활에서 차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임을 몸으로 느꼈다.


도슨트를 하면서 관람객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즐거웠고, 내 말에 집중하는 관람객들을 보며 뿌듯함도 일었다. 나보러 설명을 잘 한다며, 도슨트 한 지 얼마나 묻는 사람도, 자신과 같이 일을 해보자고 말하는 사람도 생겼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 소소한 사건들이 생겼고, 우울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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