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락의 집

엄마는 참지 않지

by own scene

이천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꼬박 이틀을 기절하듯 잠만 잤다. 홍은성에서 벌레와의 씨름 덕에 2개월 동안 긴장한 채 살았다. 밀린 잠이 쏟아졌나 보다. 감기도 걸렸다. 생전 먹지도 않는 라면이 맛있어서 이틀 내내 끓여 먹었다. 누워 있는 동안 생각했다. 리천성에서는 고립감을 느끼게 될까, 고독의 자유를 느끼게 될까.


쌀의 고장인 이천은 어느 밥집이나 맛이 있었다. 밥을 싹싹 긁어먹다 보니 3kg나 쪘다. 주말이면 서울러들이 이곳으로 놀러 오는 덕에 크고 예쁜 카페도 많았다. 그렇지만 맛있는 커피를 파는 곳은 없었다. 서울에서는 김서방 찾기처럼 쉬운 카페 맛집이었는데, 이천에서는 사막에서 바늘 찾는 꼴이란 걸 깨달았다. 카페를 가는 대신에 원두를 구입해서 집에서 내려먹었다. 창 밖으로는 푸른 논이 보여서 여느 카페 뷰와 견줄만했다. 그렇지만 집에만 있는 백수가 카페까지 가지를 않으니, 바깥 공기를 맡을 일이 아예 없었다. 우울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천으로 이사를 오면서 우울 불안 약도 단약을 했다. 무엇 때문에 우울감이 올라오는지 헷갈렸다. 이대로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고, 해 질 녘이면 하루에 한 번 산책을 나갔다.


이천에 걸맞게 우리 동네에는 논이 많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벼가 춤추듯 몸을 흔들었다. 내 마음도 벼처럼 기분 좋게 움직였다. 몇 백 평 혹은 몇 천 평, 논이 넓게 펼쳐져 있으니 주변이 조용하다. 바람결에 스슥 소리를 내며 벼가 나부낄 때마다 악의 기운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집 앞만 산책을 나가니, 산책도 몇 번 만에 지루해졌다. 버스도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동네. 산책 겸 원활한 시골 생활을 위해 자전거가 필요했다. 당근으로 8만 원짜리 자전거를 샀다. 시내에서 거래를 한 터라, 자전거를 사 올 때는 고개를 오르내리며 한 시간을 발을 굴려 동네로 왔다. 날씨는 더운데, 자전거를 타면서 받는 바람은 시원했다. 바람이 땀을 씻어주면 샤워를 하는 것 처럼 개운했다.


이천 생활에 적응을 찾아가던 무렵, 엄마는 이천까지 쫓아와서 훈수를 뒀다. 홍은성은 집이 넓어서 엄마가 떠들어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데, 원룸의 리천 집에서는 골이 아팠다. 엄마는 멀리까지 왔다며 꼭 자고 가는데, 내가 먼저 미쳐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더 멀리 도망가야 하나 싶었다. '원주로 갈까' 생각하던 차에 시골언니 프로젝트 원주편을 발견했다. 귀촌한 언니들에게 조언을 듣고 같이 살아보는(?) 5박 6일의 귀촌 체험이었다.


급작스레 원주로 갔다. 이천보다 번화한 원주에는 문화생활도, 카페도 다양했다. 산도 바다도 가까웠다. 호주 시드니로 여행을 갔을 때 살고 싶었던 이유가 도시와 바다가 근접해서 였는데, 원주가 딱 그랬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부동산을 가봐야하나, 어느 동네로 갈까 고심을 하면서 이천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엄마가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고 다녀갔다. 피곤해서 엄마에게 연락도 하지 않은 채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외출하고 돌아왔다. 엄마가 화장을 곱게하고 몸에는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채우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무슨 고기?"

"너가 먹고 싶다고 한 데 있잖아."

"그게 어딘데."

"저번에 너가 말했는데."

"나 힘들어. 쉴래."

하루 종일 내 집에서 기다렸다고 그냥 갈 수 없단다. 급 짜증이 났다. 이놈의 엄마는 제 멋대로 와놓고, 왜 나를 도통 쉬질 못하게 하는 걸까. 주인도 없는 집에 왜 멋대로 들어오냐며 소리를 쳤다. 그리곤 다시 오지 말라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홍은성에서든 리천성에서든 엄마는 경계 없이 나를 침범해 왔다. 다시는 엄마가 내 허락 없이 내 공간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집 비밀번호를 바꾸겠다며, 또 나 없을 때 오면 신고할 거라고 했다.


평생 내 공간에 대한 존중 없이 멋대로 침범해 오는 엄마였다. 이제는 내가 나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이 곧 나고, 내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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