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퇴사. 나는 육아휴직. 그럼에도 나는 부자다.
내가 육아 휴직을 결정했을 때 단 한 명도 나에게 잘했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나는 소위말해 회사에서 평가도 좋았고, 무엇보다 남편이 퇴직을 했고, 아이들을 해외 국제학교를 보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미친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몰라서 그래?라는 분위기였다.
안다.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 안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직"이 아닌 "육아휴직"을 택한 거 아니겠는가.
끌어당김에 빠지면서 나는 부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끌어당김을 알게 된 게 23년 11월 경이었으니, 24년 초반부터 "내가 자는 시간에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처음 주식이라는 것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첫 주식 시작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주식이라고 하는 이유는, 당시에 내 주변 모두 업계와 관련된 주식으로 많은 수익을 내고 있었던 때라, 특히 내 매니저의 강력한 추천으로 영웅문이라는 앱도 처음 설치하고, 돈도 입금하고 주식도 사보았었다. 그러나 사실 크게 관심도 없고, 여력도 안되었던 나는 0원이 되어도 내 생활과 감정에 타격이 없을 금액만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예상했던 인센티브보다 조금 더 들어온 금액만큼만 소액을 넣었었다.
어쩌면 덕분에 다시 주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이미 행정적인 절차(?)- 앱설치하고, 입금하고 어쩌고 하는 기본 준비 과정- 를 안 해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참고로 6년 만에 로그인한 그 주식은 -50% 정도를 찍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 한창 끌어당김에 집중하던 때가 아니던가. 아싸! 공돈 생겼다. 고 잃어버린 돈 찾은 마냥 이 돈으로 주식을 시작하면 되겠다고 긍정회로를 돌렸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다. 주식 시장은 내가 일하는 시간에만 야속하게도 거래가 가능했다. 주식 공부도 해야 하고, 투자고 해야 하고 그래프도 읽어보고 해야 하는데, 일하는 시간에 거래를 할 수 있으니 너무 벅찼다.
결정적으로 주식을 떠올리면 스트레스부터 생겼다. 끌어당김을 하다 보면 "경쟁적인 사고를 하지 말고 창조적인 사고를 하라"라고 하는데, 제로섬 경쟁에서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좋다는 주식을 사는 건 그냥 내 돈을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럴 려면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데 평소 이론을 먼저 공부하고 적용하기보다는 실전으로 경험하면서 배워가는 스타일이다 보니 평일 업무 시작에 주식을 해보고 공부하는 거는 불가능했다.
그러던 와중에 팀원 중 한 명이 "저 3500만 원일 때 비트코인을 샀는데, 지금 8000만 원이라 팔았어요."라고 했고 그렇게 코인을 알게 되었다. 신세계였다. 24시간 거래가 가능했고, 오히려 우리나라 밤 시간이 미국이 낮시간이다 보니 더욱 활발하게 거래가 진행되었다. 업무에 방해받을 게 전혀 없었다. 24년 4월 그렇게 나는 코인에 입문을 하게 되었고, 야근 시간 1-2시간을 줄여서 코인을 해보면서 내 감을 익혀 갔다. 그렇지만 주식이나 코인은 그렇게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럼에도 내가 자는 동안에도 돈이 합법적으로 움직이고 쌓여갈 수 있는 하나의 경험을 해본 것에 큰 의의가 있었다.
현재는 미국 ETF에 16.5% 수익을 내고 있는 1000만 원이 안 되는 돈과 1개 가격이 6400만 원 정도 내려갔을 때 비트 코인을 1000만 원 치 사둔 게 있는데 중간에 바이낸스로 옮겨 놓았고, 약 7,800$ 투자했던 그 돈이 현재 약 21,000$ 정도하고 있으니 수익은 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더는 추가 투자하고 있지 않지만, 육아 휴직을 끝내고 아이들 교육비용이 줄어드는 시점이 오거나 그전에 여유금이 생기면 미국 ETF와 비트코인에 조금씩 더 넣어둘 생각이다.
아이들 학비가 연간 6000만 원이 들고, 그 외의 활동비나 영어 보충 수업비 및 월세와 생활비까지 하면 연간 1억이 넘게 든다. 다행히 남편이 희망퇴직을 하면서 3억 가량의 목돈을 받게 되었고, 적어도 2025년 하반기부터 26년 상반기까지의 학비 (여기는 영국식 학교라 8월 시작하여 다음 해 7월까지가 한 학년이다.)는 해결되었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비와 보조 학비 등을 내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러던 중 정부도 바뀌고 부동산법도 바뀌면서 대출이 까다로워졌고, 오피스 완공과 더불어 중도금 & 잔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팔리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남편의 퇴사로 인해 모든 1-2 금융권 대출이 거절되었다. 남편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고, 걱정에 잠을 못 이뤘다.
엎친대 덮친 격이라고, 엄마는 이른바 리딩방에 가입하게 되어 1억 가까이 잃게 되었고, 그중 5천만 원은 지인들에게 빌린 돈이라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중에서도 급하게 갚아야 하는 돈이 2천만 원이 되었는데, 혼자서 한 달을 고민하다가 방법이 없어 나에게 털어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도 연락을 받았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대출을 옮겨 주겠다는 면목으로 기존 대출금 때문에 추가 대출이 안 나오니 그걸 빨리 처리하고 그 돈까지 대출받게 해 주겠다는 유혹에 홀랑 넘어가서 이미 천만 원을 입금한 상태였고 나머지 천만 원을 내게 빌렸다가 다음날 대출을 받으면 바로 돌려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아빠는 롯데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롯데 같은 대기업이 영업 직원 개인 통장으로 돈을 입금하라고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아빠의 믿음은 대단했다. 왜 나이 드신 분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지 알 것 같았다. 3시간을 이야기했고, 다음 날 아침에 롯데 카드 사로 전화해서 그제 입금한 천만 원이 잘 처리되었는지 확인이 된다면 두서없이 천만 원을 보내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아빠는 사기를 인정하며 그 천만 원도 친구에게 빌린 돈인데 어쩌냐고 낙담을 했다.
급하게 필요한 돈 총 3천만 원.
내게는 현재 그런 큰돈이 없다. 애들 일 년 치 학비를 내고 남은 2억 가량, 오피스 잔금처리를 하려면 5억이 필요한데 대출도 안 나오는 상황이라, 예전에 나였다면 그야말로 패닉상태가 되었을 거며, 육아 휴직을 철회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행복은 무슨 행복! 그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지. 내 주제에 뭐."라고 했을 거고, 아주 싼 값에 빨리 오피스를 처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는 평생 가슴에 남을 상처되는 말들을 퍼부었을지도.
그런데 나는 괜찮다 했다. 우리의 인생은 점점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반드시 해결 방법이 있을 거라고. 걱정은 걱정을 낳는 법이니 방법이 있다고 믿자고 했다. 물론 끌어당김 자체를 못 마땅해하는 남편이 진심으로 방법이 있을 꺼라 믿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는 걱정하는 말이나 표정 등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엄마 아빠한테도 이미 벌어진 일인데 거기에 얽매어 살면 현재도 미래도 슬프고 스트레스받으면서 과거에 갇혀 사는 거다. 집이 팔리면 금방 가능하겠지만,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쉽지 않고, 방법을 찾아볼 테니, 그동안 엄마 아빠는 빌려준 지인들을 잃고 싶지 않으면 깊이 사죄하고 아이가 최대한 빨리 자금을 마련해 본다고 하니 조금만 믿고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딸과 사위에게 미안하다면 이런 일로 건강이 쇠약해져서 병원 신세를 져야 하면 그게 더 민폐이니 지난 일 잊고 건강 관리 잘하고, 미안한 만큼 손자 손녀에게 사랑 듬뿍 주면 된다고 다독였다. 마음이 계속 거기 머물러 있으면 현재도 그 상태에 머물게 되니 정말 딸에게 미안하면 얼른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라고, 그게 엄마 아빠가 할 일이라고.
나라고 1도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나는 진짜 내 인생을 믿기로 했고 믿었다. 점점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굴곡이 없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나는 그 골짜기에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던 중에 내 주 거래 은행에서 아이들 학비 송금건에 대해서 추가 자료 요청이 왔고, 그 논의를 하던 중에 남편 명의 오피스를 대출금을 위한 아파트 담보 대출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지 확인했는데 다행히 가능했다.
오피스 분양권을 살 당시에도 오피스텔로 하냐 오피스로 하냐 고민을 했었는데, 오피스였던 덕분에 2 주택 소유자가 아니라서 심사를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의 퇴직금 일부와 추가 대출금으로 무사히 잔금 처리를 완료하게 되어 큰 걱정 하나는 무사히 넘긴 셈이다. 또한 최근 대출 규제가 까다로워지면서 많은 분양자들이 잔금 처리가 어려워지고 늦어지면서 빠르게 중도금/잔금 납입 완료한 세대에게는 1%를 돌려주는 혜택을 준다며 예상치 않은 600만 원가량의 돈이 생기기도 했다. 작년 성과에 대한 회사 인센티브가 들어왔는데 예상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왔고, 올해부터 육아 휴직 비용이 사후 정산이 사라져서 매달 100%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휴직비도 최대 250만 원으로 오르면서 애초 육아 휴직을 대비할 때 세워놨던 계획보다 육휴비를 조금 더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0여 년 전에 지인이 보험사에 들어가면서 부탁 부탁을 해서 적금 형태의 보험을 가입한 적이 있는데, 복리로 이자가 계산되는 거라 만일 목돈이 있으면 목돈을 한 번에 넣어 두고 잊고 지내면 이게 나중에 이자가 쏠쏠할 꺼래서 도와주는 마음으로 가입했었더랬다. 10년 만기로 2천만 원을 넣었었는데, 만기 2년이 지나 해지 관련 연락이 때마침 왔고, 해지를 하니 2200만 원 정도의 목돈이 들어왔다. 너무나도 신기하게 보험금과 오피스에서 1% 혜택 돌려준 것과 인센티브 조금 더 나온 돈을 합치니 3천만 원이 딱 마련되었고, 나는 엄마 아빠에게 그 돈을 보냈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지만, 진심으로 아깝지 않았다. 내가 돈을 대하는 방식 대로 돈이 내게 오리라는 걸 이제는 믿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였으면, 시댁에서도 예전 이슈가 있어 2000만 원을 우리가 부담해야 했던 적도 있고, 어머니의 불교를 가장한 사기꾼에 3천만 원 사기당한 것도 해결해줘야 했으며, 양가 가족들이 사기당한 걸로만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다. 내 인생 왜 이럴까? 돈이 생길만하면 다 새네. 어휴. 이러면서 자책하고, 속상해하고, 스트레스로 몇 날 며칠. 아니 솔직히 생각이 날 때마다, 금전적인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 돈들을 떠올리며 아쉬워했을 터다.
그런데 끌어당김에 빠진 뒤로는, 적어도 정신 승리하는 법은 이제 안다. 그리고 그 생각 덕분인지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항상 어떤 일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지 사람이 죽는 법은 없다고, 방법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과정을 내가 스트레스나 슬픔 고통으로 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회복 탄력성이 높아지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남편은 한 달 한 달이 지날수록, 그의 퇴직금 통장이 얇아질수록 한숨이 늘어나고 걱정하는 얼굴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슬슬 오피스를 보러 온다는 부동산 연락도 오고, 아파트 뷰잉을 온다는 사람들도 종종 생기고 있어, 나는 그저 불안한 마음보다는 좋은 주인을 만나려고 시간이 걸린다고, 누구든 나의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주인을 만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업계 관련 자문 요청이 오면 소소하게 하고 있으며 업계 관련 AI원고 작성 의뢰 등 소소하게 용돈 벌이 하면서 나는 계속"내 행복 찾기" "끌어당김의 힘"을 믿고 그 길로 걸어가고 있다.
경제적인 부분은 "안정적"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있을 때도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겨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그게 아닌 상황에서도 또 이렇게 소소한 알바나 예상치 못한 수입이 들어오는 경우도 생긴다.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과 내 인생은 점점 우상향 중이라는 확신은 지금 당장의 경제적인 측면에 집중하기보다는 하루하루를 알차게 행복하게 성공적으로 살기 위한 에너지로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람마다 다 다른 목표와 소망이 있고, 내가 제일 불행한 것 같아도 돌아보면 집집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회사에서는 내가 곱게 커서 어려움 없이 부유하게 살아온 줄 안다. 이런 내막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듯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나만 제일 불행해!라고 생각하면 그 믿음이 정말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억울하지 않은가. 나는 다른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어찌 제일 불행하다고 할 수 있지? 비교 자체를 할 수 없는 게 인생인 거다. 왜냐면 각자는 각자의 삶만 살아볼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기준에서 내가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그것이야 말로 성공한 삶이 아닐까. 나는 그런 의미에서는 직장을 다닐 때 보다 남들이 보기에는 불안한 삶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 스스로는 마음이 풍요로운 부자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