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으로 느끼라는 것, 끝 상태로 살아가라는 것.
확언을 매일 외치는 것. 확언을 매일 쓰는 것. 빼곡히 쓰여가는 노트를 보면서 나름 뿌듯함을 느끼고 일부 이루어진 것들에 대해 끌어당김을 있다고 믿었고 믿고 싶었고, 믿어야만 했다.
그래야 지금의 현실을 더 나은 현실로 바꿀 수 있으니까 내가 선택한 것들이 옳은 것이라고 증명할 수 있으니까.
내가 해오던 일은 마케팅이라고는 하지만, 데이터를 근거로 evidence를 바탕으로 사실 기반의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일들을 하다 보니 나는 증거들이 필요했다.
글 쓰는 일도, 끌어당김도, 내가 믿는 행복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도 모두 근거가 필요했고, 그 결과가 필요했다.
누가 달라고 해서도 아니고, 누가 날 못 믿는다고 해서도 아니었고, 그냥 내가 살아온 방식이 나를 스스로 그렇게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왔던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끌어당김을 하면서 중간 점검을 한 답 치고 정리를 하면서 나는 중간 결과를 정리하게 되는데, 증명할 수 있는 감정에 기반한 “뭔가 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감정”에 대해서는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 마음 상태가 100%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두 달 동안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두 달 동안 확언도 멈췄나? 아니다. 또 그것까지 멈추면 안 될 것 같아서 습관적으로 계속 외쳐왔다.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면서 왜 안되지 하면서도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어떤 날은 정말 마음으로 느껴져서 기쁘고 설레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불안해하면서도 계속해서 해왔다.
한 달은 괴로워하면서 지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는 내가 너무 한심하면서도, 19년 동안 쉼 없이 달렸으니 잠시 쉬는 것도 허용해 주자 하면서 스스로 위로도 하면서 보냈다면
다른 한 달은 그냥 좀, 내려놔봤다. 정말 그냥 내려놔봤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에게서 불현듯 깨달은 것이 있는데, 아이들이야 말로 현재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이들은 지금 행복하고, 지금 슬프고, 지금 기쁜 것이 집중한다. 과거를 회상한다고 시간을 보내거나 미래를 걱정한다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면서, 현재를 충실히 행복하게 보내면 자연히 행복할 수 있다는 그 말이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끌어당김을 한다고 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현재를 안 살고 미래를 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미래를 걱정하면서 오지 않는 미래에 “불안함”으로 현재를 낭비하고 있었다.
불안함으로 채워진 현재가 모여서 충만한 어느 날의 ”현재 “가 내게는 올 수 없는 데 말이다.
그래서 현재의 감정으로 느끼면, 그 상태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 상태가 된다고 한 게 아닌가 하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그냥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다 이루었다고.
나는 이미 행복하다고.
지금 딱 이 순간순간에 충실하기로, 그렇게 마음먹고 - 그게 나는 끌어당김의 핵심이라고 믿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살기 시작했고 하고 있다.
그러자 확언을 외칠 필요도 없고, 쓸 필요도 없어졌다. 아이를 바라보는 그 순간을 행복하다 생각했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는 그 순간에 가족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누군가에게 지금의 이 순간순간을 살며 행복하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 좋다.
돈이 많아지면 뭘 해야지,
소설가가 되면 뭘 해야지,
어디 살게 되면 뭘 해야지,
이런 생각들이 다 사라지고, 그냥 지금 이렇게 숨 쉬고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해졌다.
지금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남편은 퇴직자이다. 점점 여유자금은 바닥나고 있는 상황이 맞다. 그렇지만 내 인생은 항상 우상향 하고 있다는 믿음, 내 가족과 여유로운 생활과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방법은 내가 직접 설계를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생겨 나리라는 믿음, 나는 그저 현재에 행복하고 감사하며 매사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지금의 내 상태를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나는 중간중간 계속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