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연봉을 포기하고 수입 0원을 선택한 40대 부부

금이 갔던 알에서 첫 조각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by 보통의 하루

머릿속이 복잡했다. “행복”에 집착이 생길 만치 집요해졌다. 출근길에는 행복에 대한 유튜브를 들었다.

근본적인 해소는 아니었지만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면 너무 크고 무모한 목표 때문일 수 있으니 소소한 작은 성공을 자주 하면서 스스로 자존감을 키우고 행복한 기분을 느껴보랬다.


소소하고 작은 성공?

거실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 한번 같이 읽은 적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죄책감 해결 방법이랍시고 좋은 원목의 아주 비싼 책장을 맞춤 제작했더랬다. 책만 잔뜩 꽂아둔, 아무도 눈길 한번 안주는 우리 집 책장.


아이들 책 읽어주는 건 고사하고, 회사 핑계 육아 핑계로 책 한 권 안 본 지가 첫째 태어난 후로만 계산해도 7년째다. 소소하게 성공을 해보라고 하니 일단 매일 한 문장만 읽자.


그렇게 시작한 책 읽기가 두 달이 지나자 7년 동안 한 권도 안 읽었던 책을 12권이나 읽어냈다. 약속 없는 점심시간엔 김밥 한 줄 사서 캔틴에 앉아 책 보며 먹었고, 어차피 매일매일 업무는 쌓여있는 거니 새벽 1시 이후엔 야근을 안 하고 책 읽다 자기도 하고, 시간이 없다는 건 정말 핑계였다. 화장실 갈 때도 핸드폰 대신 책을 가져가면 한 줄이라도 읽을 수 있는 거였다.


다른 건 몰라도 매일 불안하고 스트레스받으며 살아내던 일상이 조금은 편해졌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 통이 넓어지는 건지 이유 모를 불안함 대신 이유 모를 여유로움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참 큰 수확이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책을 읽고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나만의 해답을 찾아가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남편과는 긴긴 대화를 나눴다.


우리 애들은 우리처럼 살게 하지 말자.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렇게는 살지 말게 하자. 나는 해외지사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니 당신이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 나가는 건 어떨까? 어릴 때 나갈수록 적응도 빠르니 미리 나가 살고 내가 해외지사 가게 되면 거기에 같이 모여 살면 좋을 것 같은데, 한 2-3년 내가 일에만 올인하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다정하지도 웃음이 많지도 않은 남편인데 대신 한결같고 묵직한 사람이다. 그래서 육아 팔 할을 혼자 하면서도 단 한 번도 나를 원망하는 말을 입밖에 낸 적 없는 사람. 이번에도 단번에 내가 하는 말에 “그래” 한마디로 동의해 줬다.


남편의 “그래”는 정말 무거웠다.

말로만 하는 동의가 아니고, 바쁜 나를 대신해서 일단 1차 조사를 하고선 단 2일 뒤에 내게 브리핑을 했다. 아주 간결하게,


와이프의 가장 가능성 높은 해외 지사는 일단 싱가포르, 상하이, 홍콩 정도.

아이들 해외 교육으로 많이 가는 곳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요새는 태국 베트남도 많이 간다더라. 아니면 싱가포르와 가까운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와이프는 아이들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주말 동안 왕복하기 너무 힘드니까, 동남아 쪽이 좋겠다 싶어. 한국에서 일하면서도 그나마 자주 올 수 있고 특히 싱가포르는 출장도 종종 가니까 출장으로도 만날 수 있고, 만일 싱가포르 지사 발령받으면 더더욱 그 생활 그대로 유지할 수 있으니까 싱가포르나 조호바루로 알아볼까?


그리고 이틀 뒤,

조호바루는 한 달 살기는 좋은데 오래 있을 거면 차라리 쿠알라룸푸르가 다들 낫다고 하네. 비행기 타고 싱가포르까지 한 시간 좀 더 걸리는 거리니까 제주-서울 정도로 생각한다 치면 이왕이면 최소 2-3년 있다가 싱가포르이나 조호바루로 옮긴다 해도 나 혼자 육아하려면 인프라가 좀 더 잘 갖춰진 게 나을 것 같아서 쿠알라룸푸르 국제 학교 5개를 뽑아봤어. 보고 결정해 보자.


그렇게 우리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기로 했고, 영국식 학교 첫 학기인 8월 입학을 하기로, 한해 전 12월 최종 결정 내렸다.


이주 D-7개월,


우리는 양가 가족에게 알렸고, 모두가 반대했지만 묵묵히 우리는 우리 결정을 따라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빨리 해외지사 발령을 위해 고군분투하기로 했고, 남편은 이듬해 1월 1일 자로 바로 육아 휴직을 하고, 아이들 입학시험, 입학 서류, 집 렌트, 자동차 구입 등등 실제 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꼼꼼히 챙겨 나갔다.


학비가 만만찮게 비싸서 나는 반드시 연봉을 계속 올리며 지사를 나가야만 했고 2-3년 후에 돌아오는 플랜이 아닌 해외지사 발령과 동시에 쭈욱 외국에서 살 계획이었기 때문에 현재 집은 팔기로 했다.


우리의 계획은 매우 합리적이고 계획적이고 전략적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회사를 그만둔다는 생각을 1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생존이고, 생계이며, 아이들을 위한 부양이었고, 이런 삶이 행복하진 않지만 응당 내 인생이니, 이 한 몸 갈아 넣으며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살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금이 갔던 알에서 첫 조각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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