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연봉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작은 조각이 툭 하고 금이 가는 순간, 부서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by 보통의 하루

양가 부모님은 우리를 만나면 언제나 해주시는 말씀이 있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 초심으로 회사에 충성을 다하면 오래 다닐 수 있다. 사업, 주식 이런 거에는 아예 눈을 돌리지 말거라. 그저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것과 적게 쓰고 꾸준히 모으면서 살다 보면 편안해지는 날이 온단다. 요행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결혼 준비부터 아무런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우리는 양가의 기둥이자 뿌리였다. 모든 양가 경조사의 비용은 당연히 우리 몫이었고, 양가 부모님 용돈도 우리가 드리는 게 응당 당연한 의무였다. 불만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들의 지당하신 말씀을 새겨들으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고, 집안에 복덩이 며느리, 잘 자라준 대견한 딸이라는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했다.

승진을 위해, 정확하게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 후 5년간 아이도 갖지 않았고, 커리어를 1순위로 고려한 가족계획 하에 36살이 되어 첫째를 38살에 둘째를 출산했고, 아이들 양육을 위해서는 최소한 60세까지는 회사를 다녀야 하며, 이후 계획도 필요했다.

엑셀을 펴고 75세까지의 플랜을 세웠다. 매달 들어오는 돈, 경조사비, 교육비 등등 인플레이션을 고려하고 65세 이후 연금 수령까지 고려한 후 매달 실제 사용한 비용을 계산하며 그렇게 매달 매달을 살아왔다.

남은 세월을 생각할 때면,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할 때면 한숨이 나오고 눈앞이 깜깜했지만, 모두가 이렇게 살아내기에 나도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기에 [가족의 새 출발]을 결정하는 순간에도 나는 단 한 번도 회사를 그만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더 높은 연봉으로 더 높은 직책으로 얼른 해외 지사를 나가는 것만이 가족이 함께 모여 살 길이라 생각했고, 그만큼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한 나의 스트레스 강도는 높아갔지만, 응당 그것은 가족을 위한 헌신이고 노력이었다고 믿었다.


'이렇게 큰 변화를 준비하는데, 나도 좀, 변해도 되는 거 아닐까?'

한 번도 꿈조차 꿔 본 적 없는, 굳건했던 내 삶, 일, 생활이, 가족의 새 출발이라는 큰 우산 아래서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라고 생각했던 외부 타이틀도 근본적인 내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을 떠나, 나는 지금의 일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가족을 위한 헌신과 노력이 아니라면 꼭 이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왔다. 내 몸 하나 건사 하고 사는 삶이라면 몇 년만 죽어라 일하고 안 먹고 안 쓰면서 소소한 알바만 하고 살더라도 지금처럼 일을 하고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수만 번도 더 했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사업이나 직업, 어떤 환경에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반대로 똑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바로 옆집 사람은 여전히 가난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좋아하고 나에게 맞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자기 재능이 발현되고, 재밌고, 할수록 능력이 더해져 간다면 최선은 당연한 결과니까요. <불멸의 지혜> 중


내가 행복한 일을 찾아서 잘릴 걱정 없이 내가 스스로 해낸다면, 정년 없이 오래오래 일을 하며, 무엇보다 내 인생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처음으로 내 인생의 변화도 스스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독서를 하며 설레는 희망이 가득하다가도 현실적인 질문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지금의 일이 아니라면 나는 뭘로 돈을 벌고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는 걸까?


세뇌되어 온 가장 최선의 삶은, 그저 따박따박 월급 받으며 회사 내에서 인정받고 승진하고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인데, 그 외의 삶에서 내가 어떤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나는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찾아보자.

그간의 독서로 다져진, 조금은 단단해진 내 내면의 소리가 말했다. 아직은 직장을 다니고 있잖아. 회사일도 열심히 하면서, 독서를 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계속 찾아보자.


내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두 아이와 평생 든든한 동반자인 남편이 있으니 그걸 믿고,

나 스스로도 한번 믿고 찾아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자, 신기하게도 회사로부터 받던 스트레스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관둘 임시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 부족한 영어로 스트레스받던 본사 회의도, 행여 누군가가 오해해서 승진이나 해외 발령이 어려워 질까 노심조차 하던 행동도 마음도 사라지고, 내가 꿈꾸는 삶을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니 일은 내가 독립하기 위해 도와주는 하나의 경험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40여 년 굳건했던 내 가치관, 사고방식들이 무서운 속도로 서로서로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무너져 갔고, 나는 두려움보다는, 무너진 공간에 새로 지을 내 집을 상상하며 행복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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