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깜박 ADHD엄마라서
다른 건 몰라도 책은 아이들에게 많~이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인생을 책만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반평생 가까이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느끼게 해 준 것이 바로 책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수 없이 많고 많은 재미있고 유익하고 빠르고 대단히 강력한 매체들이 있지만 그래도 그중 딱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아직도 책! 책이다. 그것도 종이책!
꼬물이와 말랑이는 낮에는 실컷 집 근처 숲이나 공원에 가서 똥강아지처럼 흙 만지고 풀 따고 놀다가 저녁에 집에 와서는 자기 전까지 책을 보았다. 아직 글을 모를 때이니 내가 읽어주는 걸 들으며 책 속의 그림을 보았다. 우리 집 벽면에는 책장과 책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늘 출렁출렁 차 있었고 나는 매일 애들에게 1-2시간씩 책을 읽어 주었다. 누가 아픈 날 빼고는 거의 빼먹지 않고 그렇게 했던 것 같다.
햇빛과 바람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생각했듯이 책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들의 정신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동네에서 알게 된 엄마들이 '책육아'를 하냐고 궁금해하기도 하였다. 학원이나 학습지 같은 사교육 말고 집에서 책을 많이 보여주며 아이의 교육을 시키는 것을 책육아라고 하는 것 같다.
나도 책육아에 대한 책도 보고 참고도 하며 정보도 얻고 도움을 받기도 하였지만 내가 정말 추구하는 것이 책육아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을 보여주는게 육아의 어떤 특정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독하게? 계속 책을 읽어줄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궁금해하는 엄마도 있었는데 사실 딱히 비결이나 노하우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을 꾸준히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엄마인 내가 책이 주는 효과가 아닌 '책 자체에 진짜 관심'이 있고 정말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도 책이라는 친구를, 책이라는 세계를 즐기고 알아가며 살아가기를 진정으로 원해서이다. 거기에는 특별한 비결이나 노하우는 없고 진. 심. 딱 두 글자 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고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데 효과나 비결 스타일 같은 건 필요 없는 것처럼.
그리고 '내 아이에게 진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것도 사실 비결이 아니라 그냥 진심이어야 되는 것 같다.
내 아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 가게 하려고 가 아니고, 공부를 잘하게 머리를 좋게 창의력을 발달 시려고도 아니고, 그냥 내 아이에게 순수한 관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의 관심사 말고 아이의 관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 꼬물이가 제일 좋아하고 재미있는 것을 알아채고 거기에 맞는 책을 보여 주어야 하니까. 요즘 말랑이가 제일 궁금해하고 신기해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런 책들을 구해 주어야 하니까.
그렇게 하려면 오늘 내 아이의 눈빛과 행동에 관심을 주어야지 내가 만들고 싶은 아이의 모습에 집착해서 책을 보여주면 책처럼 생겼지만 그것은 학습지나 다름이 없게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학습지... 정말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한다. 아이들 초등학교 저학때까지 한 장도 안 풀린 엄마는 전국적으로 몇 명 안 될 것 같긴 하지만)
나에게 '책은 읽는 것'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엇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챕터마다 항상 책을 보며 즐거웠고, 힘을 얻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까칠하고 깍쟁이어서 친구가 별로 없던 나의 둘도 없는 친구 가 되어 주었던 책 덕분에 덜 외로웠고 덜 심심했다. (그럴 때마다 책장 앞에 가서 책을 꺼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 나의 역할이 혼란스러울 때 나에게 새로 생긴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게 담담하고 진실되게 조언을 해 주었던 책 덕분에 덜 헤매었고 덜 힘들었다. (그럴 때는 한숨 푹푹 쉬며 책장을 넘겼다)
살면서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이별이나 상실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 삶과 인간의 희로애락에 대한 진실을 말해 주었던 책 덕분에 덜 억울하고 덜 아팠다. (그때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책을 잡았다)
책 이라도 없었다면 나처럼 유리멘탈인 사람이 어떻게 엄마까지 돼서 이 정도까지라도 살았을까 싶다. 타고나기를 투명해서 저 깊은 속까지 들여다보이는데 툭 떨어지면 깨져버리는 유리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그나마 책 덕분에 정신병원 입원해 있지 않고 지금까지 일상에서 잘 버티고 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그래, 그나마 천만다행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