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깜박 ADHD엄마라서
우리 가족은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로 이사를 갔다.
시골 까지는 아니지만 대구 끝자락에 붙어있는 동네로 우리 아파트를 기점으로 그다음부터는 쭉 산과 들이 나온다. 예로부터 골짜기가 깊고 아름다운 곳이라 이름도 무려 무릉도원에서 유래된 '도원동'이라는 곳이다.
우선 나는 사실 크게 자연 친화적인 사람은 아니다. 도리어 어릴 때부터 도시 중심지에서 쭉 나고 자라 흙보다 시멘트 바닥이 더 편한 뼛속까지 도시인이었다. (자연은 한 번씩 사진으로 보거나 차 타고 갈 때 창밖 풍경으로 구경만 해도 충분한~)
그런데 왜 갑자기 애들이랑 남편을 끌고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고자 했냐 하면..
아이를 낳아 한 3년 정도 끼고 키우다 보니 딱!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뭐냐 하면 나는 엄마인 사람이 꼭 갖추어야 할 필요충분조건 중 첫 번째 항목인 '품어주기'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
꼭 내가 엄마일 때뿐 아니라 나와 다른 성인과의 관계에서도 이 능력이 있으면 나도 상대도 편하다. 그런데 봄에 새싹 돋아나듯 폭! 폭! 자라는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는 어린 생명들이 마음 놓고 피어날 수 있도록 주양육자가 보드라운 흙처럼 품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뿌리가 이리 삐죽~ 저리 삐죽~ 마음껏 자기 생긴 모양대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그런데.. 품. 어. 주. 다. 네 글자 말이 쉽지 솔직히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부분이었다. 기질적으로 솜처럼 포근하고 부드럽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엄마인 내가 덜 커서 아직도 이리저리 삐죽삐죽 자라는 중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어쨌든 타인을 지켜보고,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는 것에 나는 거의 젬병인 거다. 아이들을 귀여워하고 이뻐하는 것이랑 품어주는 것이랑은 또 다른 문제이니까.
그럼에도 그나마 참 다행인 부분은 내가 빨리 알아채고, 바로 실행한다는 점이다.
특히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 님의 위대한 말씀을 잘 새겨듣고 내 꼴을 재빨리 눈치채고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나의 성향이나 기질을 바꾸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가능하다 하더라고 일 년에 한 방울씩 평생이 걸릴 텐데. 그럼 우리 애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될 때쯤에나 겨우 "아이고~~ 우리 엄마,
100살쯤 되시니 이제 쬐~끔 푸근해졌네!" 할 텐데.
주양육자인 내게 부족한 부분을 아이들에게 채워줄 무언가가 무얼까? 아빠도 할머니들도 물론 나보다는 훨씬 푸근한 사람들이지만 아이들을 온종일 매일같이 상대하는 건 나였다.
우리는 날씨만 괜찮으면 매일같이 밖으로 나가 돌아다녔다.
꼬물이 손 잡고, 말랑이 유모차에 간식이랑 물이랑 싣고 산이랑 개울이랑 여기저기 쏘다니며 다니다가 해 질 무렵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셋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꼬질꼬질 똥강아지처럼 되어서~
날씨가 좋으니 육아도 좋다.
9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어느 가을날
아침기온 20도, 오후기온 26도, 습도 30%,
미세먼지 20, 초미세먼지 10
대......................................................... 박!
유치원 마치고 공원에 스쿠터 끌고 나와서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데,
꼬물이랑 말랑이는 집에서 인형 하나씩 가지고 나와 자기들끼리 무슨무슨 놀이를 하면서 잘~논다.
나뭇가지랑 풀이랑 돌이랑 내 고무슬리퍼만 갖고도 2시간쯤 거뜬하다.
모기들이 한 번씩 귀찮게도 하지만 뭐 이쯤이야.
뭐든지 과잉이 되기 쉬운 요즘
미니멀 육아를 실천하기 가장 좋은 곳은
장난감도 책도 미술도구도 과자도 없는 바깥인 듯.
뭐가 있어야 어지르지 ㅋㅋ
요즘은 가을이 짧아져서 아깝네 아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