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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bk Sep 08. 2023

쾌락원칙 너머

Jensits des Lustprinzips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쾌락이란 단어는 흥분, 혹은 자극의 추구라는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쾌락은 흥분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에게 쾌락은 흥분의 감소, 즉 불쾌를 축소시켜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해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 즉 '쾌락원칙'을 정신분석학의 제1원칙으로 설정하였다. 쾌락원칙은 정신의 엔트로피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쾌락만을 무절제하게 추구하지 않는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의 눈앞에 있는 현실적인 제약들이 우리의 쾌락추구를 가로막는다. 종교, 문화, 관계 등 인간에게는 고려할 것이 너무 많다. 이 중 가장 근본적인 고려대상은 바로 자기 보존이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함과 동시에 자기 보존 또한 같이 고려한다. 그래서 인간의 쾌락추구는 자기 보존 욕구에 의해서 타협된다. 쾌락원칙을 보조하는 제 2 원칙을 프로이트는 '현실원칙'이라 하였다.


  프로이트는 현실원칙이 자기 보존의 욕구의 실현 이외에 다른 상황에서도 발현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여러 가지 욕구들이 서로 경쟁할 때 생기는 충돌상황이다. 인간에겐 여러 가지 욕구가 다발적으로 발현이 되지만 모든 욕구를 한꺼번에 해소하기란 물리적으로 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은 여러 가지 욕구들의 우선순위를 설정하여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차적인 욕구를 탈락시킨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한 욕구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절제의 그물에서 탈출하여 더욱 강렬히 선택받고자 한다. 탈락된 욕구들은 본래 쾌락의 추구였으나 저항하며 의식의 표면으로 비집고 올라오려고 할 때 그 욕구들의 추구는 불쾌의 추구가 된다. 우선순위가 앞선 쾌락의 추구에 방해가 되는 욕구의 추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욕구들은 불쾌의 감내를 주관하는, 즉 쾌락의 절제와 타협을 주관하는 현실원칙의 소관이 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다수의 사례들을 1차 대전 후에 맞이하게 된다. 끔찍한 경험을 한 참전군인들이었다. 전쟁터에서 귀환환 참전군인들은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성 신경증을 호소하였다. 트라우마는 의식이 감내할 수준이라면 의식 속에 머물러 있지만, 의식이 감내 못할 정도로 자극적이라면 의식은 트라우마를 무의식 속으로 밀어내어 억압한다. 무의식 속으로 억압된 트라우마는 다시 의식 속으로 떠오르고자 하지만 의식은 트라우마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버거워 다시 억압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은 외상성 신경증 환자의 반복되는 이상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때 환자는 무의식으로 억압된 트라우마를 기억하지 못하며 의식으로 회귀하고자 흔적인 고통스러운 반복강박만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반복강박은 쾌락원칙에도 현실원칙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환자가 고통의 해소를 원한다면 트라우마상황이 해결되는 상황을 추구하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그러나 외상성 신경증 환자들은 트라우마가 해결되는 상황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강렬한 트라우마의 단편, 고통만을 반복하고자 한다. 어째서 환자들의 자아는 쾌락원칙을 따라서 억압된 트라우마를 의식으로 꺼내어 해소하지 않고 저항하여 트라우마를 억압하고 고통의 반복만을 추구하는 걸까? 프로이트는 쾌락원칙을 뛰어넘는 강력한 반복강박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이 반복강박은 쾌락원칙보다 더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쟁 신경증뿐만 아니라 평화 시의 외상성신경증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전쟁신경증의 경우, 동일한 증상이 때로는 난폭한 기계적 힘의 개입 없이도 나타난다는 점은 한편으로는 사태의 해명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외상성 신경증에서 성찰의 실마리로 삼을 수 있었던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그 주요 원인이 놀람의 계기, 경악에 있는 듯 보이며, 둘째는 놀라는 동시에 받은 상처나 상해가 대부분 신경증의 발생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경악, 공포, 불안이 동의어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것들은 위험에 대한 관계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불안은 어떤 위험인지 확실히 모르면서도 위험을 예상하거나 위험에 대비하는 모종의 상태를 표현한다. 공포는 공포를 일깨우는 특정한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경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험에 휩쓸려 들었을 때 빠져드는 상태를 가리키며, 놀람의 계기를 강조한다. 나는 불안이 외상성 신경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불안에는 경악과 경악신경증을 막아주는 뭔가가 있다. 우리는 차후에 다시 이 논제에 대해 다루게 될 될 것이다." -쾌락원리 너머 p.16


  외부의 강렬한 자극 완화 없이 날것 그대로 노출된다면 자기는 붕괴된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외부의 강렬한 자극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두 가지 보호체계 가지고 있다 한다. 바로 불안과 카테시스이다. 불안은 예감을 통해 위험에 대비를 하게 해 준다. 카테시스는 에너지 집중 혹은 리비도 집중을 뜻한다. 카테시스는 방어가 필요한 영역에 정신적 에너지를 집중시켜 충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한다. 강렬한 자극이 이 두 가지 보호체계를 돌파한다면 인간은 트라우마와 반복강박을 가지게 된다. 어째서 보호막이 뚫리면 반복강박을 가지게 되는가? 보호막이 뚫려 자기를 온전히 유지할 수 없을 때, 내재되어 있던 무언가가 저항할 수 없는 반복강박이 되어 내부에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프로이트는 그 무언가를 욕동이라 생각했다.


  프로이트가 생각한 욕동은 자연적이며 원초적인 것이었다. 반복강박은 쾌락원칙 내에서도 쾌락원칙 외에서도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반복강박을 일으키는 이 욕동은 쾌락원칙에 앞서 근본적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욕동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타자,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자연이다. 이때 자연의 뉘앙스는 야성적인, 혹은 야생적인으로 이해해야 한다. 거친 야성적인 무언가가 내 안에 내재되어 있다. 쾌락원칙을 포괄하는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가? 쾌락원칙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프로이트는 그것을 생물이 무생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 죽음충동이라 하였다.


 "살아있는 유기체에는 외부의 방해하는 힘의 영향을 받아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상태를 다시 살려내고 싶은 열망이 내재하는데, 욕동은 바로 이런 열망이고, 일종의 유기체적인 신축성, 또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기적인 생명체 내부의 관성의 표출일 것이다.... 모든 생명체들이 내부적인 원인으로 죽어서 무기체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예외 없는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모든 생명의 목표는 죽음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 생명 없는 것이 생명 있는 것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쾌락원리 너머 p.58, 61


  쾌락원칙의 목적은 불쾌의 해소이다. 모든 불쾌의 해소는 궁극적으로 죽음으로 흘러갈 것이다. 쾌락원칙의 너머에는 죽음충동이 있다. 이 죽음충동을 프로이트는 타나토스라 불렀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가? 죽음이 보편적이며 자연스러운 상태라면, 생명을 유지하려는 자기 보존의 욕구의 정체는 무엇인가? 죽음충동과 대비되는 생명의 충동들, 즉 자아를 유하려는 자기 보존의 욕구와 생명을 이어가려는 성적인 욕구를 프로이트는 에로스라 하였다. 아쉽게도 프로이트의 진단은 여기서 멈춘다. 프로이트는 타나토스의 존재를 정당화하였지만, 반대로 에로스의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철학자들에게 넘긴다며 논문을 마무리했다. 프로이트는 죽음을 근본적이며 자연스러운으로 보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상태 생명에 대한 설명이 요구된다. 왜 인간은 바로 죽음으로 향하지 않고 굳이 생명이란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는가... 프로이트는 생명의 비밀을 숙제로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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