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곳이 좋아요
신당역 2호선 2번 출구 쪽으로 나오면 "황학시장"이라고 써진 입구가 보인다. 그 입구로 들어가면 쭉 재래시장이 골목골목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모둠전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 골목 입구인 것 같은데. 잠시 멈춰 폰을 들어 맵을 확인 해 본다. 정말 여기에 젊은이들이 모여 술 마시는 Bar가 있다는 건가?
그때, 저 골목 안쪽으로 미러볼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저기인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돼지머리가 쌓여 있다. 다시 한번 미러볼을 확인한다. 미러볼이 있다. 그래. 미러볼을 믿고 가보자. 그렇게 도착한 가게. 커다란 유리문안으로 가게 안이 한눈에 보이는 아담한 곳이었다. 이곳이 바로 <독주>. 가게 안에는 두 명의 임차인이 기다리고 계셨다.
Q. 제법 신기한 환경입니다.
김승민 임차인 : 동남아 가보셨어요? 거기 여행 갔을 때 야시장을 갔었는데 거기 길거리 음식들이 정말 아무거나 막 팔잖아요. 그런데 그런 음식들과는 상반되는 분위기의 가게들이 골목 안 곳곳에 있는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분위기를 한번 노려 봤어요. ㅎㅎ
Q. 독주는 두 분이 운영 중이신가요?
김승민 임차인 : 네. 저와 K, 이렇게 둘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30대 후반이라 나이도 적지 않고,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비주얼이다 보니 K 같은 젊고 손님 대응하기 적합한 친구가 필요했어요. 이 전에 카페를 했었는데, 그때는 혼자서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어려운 구조가 됐기도 하고요. 전 요리를 하니까 안에만 있어야 하잖아요. 밖을 커버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Q. 카페를 하셨다고요?
김승민 임차인 : 독주를 오픈한 지 반년 지났습니다. 그전까진 6년 동안 노원에서 카페를 했었고요. K가 그 당시 손님이었습니다. 카페 오픈 때부터 오더니 결국 지금 이렇게 저와 함께 하고 있군요.
Q. 카페를 하시다가 술집을 하게 된 이유가?
김승민 임차인 : 코로나 때 카페 영업을 못 하게 하니까 배달용 햄버거 가게를 잠깐 같이 했었어요. 그때도 저 혼자 만들고 배달하고 다 했었는데 뭐 결국은 접어야 했고요. 그래서 접은 김에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걸 해보자 생각하게 됐습니다. 카페에 미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오래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희.. 술집이라고 하기엔 안주들이 너무 식사 같지 않던가요?
Q. 안주 같은 안주라기보다는 식사할 수 있는 음식이긴 하더라고요.
김승민 임차인 : 처음에는 음식점을 할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메인으로 하려니까 주문을 어떤 식으로 받아야 할까 싶더라고요. 메인 하나를 받아야 하나 1인당 금액 제한을 줘야 하나 여러 방법을 시도하며 손님 반응을 체크해 봤습니다. 하지만 잘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음식 위주면 어렵겠다 싶어서 술을 메인으로 바꿨어요. 저희가 테이블이 하나고 Bar인데, 전부 14명까지 앉을 수 있어요. 계속 로테이션을 시킬 수밖에 없죠. 하이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있으면? 그럼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카페들이 시간제한 걸어 놓은 걸 떠올렸습니다. 우리 독주에 와서 술 한 잔만 시켜서 마셔도 괜찮아, 그런데 두 시간 정해져 있어- 이렇게요.
Q. 왜 식사할 수 있는 음식을 팔려고 하신 거죠?
김승민 임차인 : 조금 다른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친구랑 술을 마시거나 회식을 하거나 하면 예전에는 보통 4차 이상은 기본으로 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가 끝난 것 같거든요. 코로나 때 더 그래졌고. 이젠 혼자 뭘 하는 게 더 재밌는 거죠. 그런 세대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려면 가게들이 바뀔 수밖에 없고요.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하던 걸 쉽게 못 버려요. 그러니까 몇 차부터는 그때 했던 걸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때 했던 걸 한 번에 다 할 수 있도록 욱여넣는 거죠. 그 포인트 하나와... 또 하나는 술인데. 소주에 과일향을 타고 뭘 하고 해도 소주에 대한 인식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다고 해요. 이왕 한번 먹을 거 더 좋은 거 먹자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 범주에 소주는 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독주에서는 그걸 다 한 번에 할 수 있게, 식사 같은 메뉴와 더 맛있고 좋은 거 같은 술들을 구성해 준비하게 됐습니다.
Q. 가게 이름이 독주인 건 독한 술이 있어서인가요?
김승민 임차인 : 우리를 뭘로 드러낼 수 있을까 이름 지을 때 고민 많이 했는데,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가자고 얘기가 됐어요. 또 한글로 하자고요. 그래서 심플하게 "독한 술 파니까 독주할까?" 이렇게 된 거죠. 독주라는 글자도 예쁘더라고요. 그런데 가게에 독한 술만 있는 건 아니에요. 또 독주가 독한 술의 독주이기도 하지만 혼자 먹는 술의 독주이기도 합니다.
Q. 주변의 시장 상인분들은 독주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김승민 임차인 : 재래시장 골목에 반짝이 조명 돌아가는 술집이 들어왔는데 소주는 안 팔고 젊은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하고 하니까 신기하셨던 모양이에요. 처음엔 많이 궁금해하셨어요. 지금은 많이 귀여워해 주시고요. 최근엔 낮에 드립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골목 상인분이 첫 구매자 셨답니다. (맛있으시데요?) 커피는 역시 맥심이란 걸 보니 입엔 안 맞으셨나 봐요. ㅎㅎ
Q. 여긴 정말 음악이 빵빵하고 좋아요. 오디오 얘기 좀 해주세요. 비싸 보이는데.
김승민 임차인 : 일본 후쿠오카에 스테레오 커피라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가 아마 여기보다 좀 작을 거예요. 그런데도 큰 사이즈 스피커를 쓰더라고요. 보통 작은 카페들은 블루투스 스피커나 제네바 스피커 정도일 텐데, 거기 스피커가 박력감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 그런 스피커를 가게에 두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음악 듣는 걸 정말 좋아하니까요. 다행히 K도 음악을 좋아해서 만장일치로 스피커를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가게 이름보다 먼저 결정된 사안일걸요? 여기서 가장 비쌀 거예요. 두 개 합쳐서 1400만 원 정도니까요.
Q. 노원에서 6년이나 계셨는데 갑자기 왜 신당동으로 옮기셨어요?
김승민 임차인 : 한 곳에 오래 있는 것도 질렸지만 그 자리가 학생들이 많은데 독주는 학생들이 오기엔 가격대가 좀 있어요. 여긴 아무래도 어른들이 많으니깐. 요즘 워낙 신당동이 뜨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하지만 정말 솔직하게는 금액적인 부분 때문에요. 임대료가 높지 않으면 초기 리스크 비용이 적은 게 사실이잖아요. 초기 비용을 줄여야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이 정도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Q. 요즘 신당동이 핫하잖아요? 힙당동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임대하실 때 시세는 어땠나요?
김승민 임차인 : 힙당동이라 부르는 구역은 사실 이 반대쪽이긴 한데,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 가게는 시장에 있는 것치고는 비싼 편이고, 다른 곳에 비해서는 많이 싼 편인데 힙당동 구역과 차이라면 권리금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쪽은 권리금이 억까지도 간다고 하더라고요. 차이는 거기서 나올 것 같아요.
Q. 다른 곳에 비해서는 훨씬 싼 편이라셨는데, 임대료가 가게 운영에 얼마나 도움 되고 있으신가요?
김승민 임차인 : 평일 간간히 고비는 있지만 주말에 장사가 좀 돼서 매출은 조금씩 나오고 있어요. 지금 임대료가 확실히 도움 되긴 합니다. 싸게 국숫집 할 거 같은 곳에 들어와서 꾸며 놓고 좋은 술, 음식 팔고 있으니까요. ㅎㅎ 임대료가 저렴하니까 리스크가 적은 건 사실이죠. 독주 정도의 사이즈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위치가 좋지 않은 건 독주만의 콘셉트로 채워 넣으면 되니까요.
Q. 부동산 요정이 나타나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형태의 가게를 내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김승민 임차인 : 저는 좀 생뚱맞은 곳으로 가고 싶어요. 뭔가 막 핫한 곳, 유동인구 많은 곳 그런 곳보다 그런 곳에서 좀 거리가 있는? 좀 떨어진 곳? 아까 물어보셨잖아요? 왜 이런 곳에 가게를 내셨냐고. 그런 이야기가 나올만한 곳에 가게를 내고 싶어요. 사람 많은 곳에서 오고 가고 지나가고 하는 것보다 우리 가게가 무슨 가게인지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Q. 상권을 만들어가는 핵심점포를 키 테넌트라고 부르는데, 독주가 키 테넌트가 되어 이곳에 새로운 상권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하이볼거리 같은?
김승민 임차인 : 신당동 하이볼 최고는 독주이긴 한데.. ㅎㅎ 어쨌든 그건 모든 자영업자들의 로망일 것 같아요. 유행을 따라가기만 하지 않고 선도한다니. 생각만 해도 정말 멋지네요. 그런 견인차 역할을 독주가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입소문 나면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생뚱맞은 곳에서 저렴한 임대비용으로 잘 버티면서 슬슬 입소문을 기다려봐야죠. 그러다 키 테넌트라는 거 될 수 있을지도요?
Q. 지금까지 나빴던 임대인 있으신가요?
김승민 임차인 : 있어요. 뭐만 고장 나거나 문제가 생겼다 하면 다 저희 탓을 하는 임대인이었는데, 건물이 오래돼서 타일이 하나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그걸 우리한테 탓을 하며 계속 괴롭히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한 번은 1층이 카페였고 그 위에 집주인이 살았는데 집주인이 주차장에 자기 차 대야 하는데 카페 손님들 차 때문에 못 대니까 가게 입구부터 주차장까지 막아버렸어요. 그 주차장은 카페에서 쓰는 건데 우리랑 상의도 없이요. 정말 어처구니없죠.
Q. 지금 임대인은 어떠세요? 좋은 임대인인가요?
김승민 임차인 : 임차인들끼리 하는 얘기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최고의 임대인은 계약 날 외에 만날 일 없고 간섭이 없는 임대인이다 이런 얘기. 연락 오면 겁부터 나니까요. 소통 소통하지만 서로 소통을 많이 안 하는 게 그냥 놔두는 게 제일 편하긴 해요. 지금 임대인이 딱 그렇습니다. 아주 좋아요.
Q.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 말씀해 주세요.
김승민 임차인 : F&B가 요즘 한 종류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시도를 많이 하고 있잖아요? 우리도 그러고 싶더라고요. 독주 몸집을 막 키워서 뭘 할 거라기보다는 얘는 지금 이 정도가 딱 좋은 것 같고. 큰 거 하나보다는 작아도 여러 개. 독주를 중심으로 카페, 음식점, 게임 숍, 만화책방 등등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조그맣게 하나씩 다 하고 싶어요. 미련 남지 않게요. K랑은 '독'시리즈를 만들어보자고 반농담까지 한 상태랍니다. 독주, 독책, 독식.. 재밌겠죠? 가능할까요?
분위기가 차분한 곳을 좋아합니다. 메인 스폿보다는 변두리를 더 좋아해요. 좋은 곳이라면 서울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사람들이 가게 인테리어 할 때부터 밖에서 가게가 만들어져 가는 모습 보며 어떤 가게인지 알아봐 주면 좋겠어요. 가게를 운영하는 중에도 밖에서 안을 보며 궁금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유리창이 큰 1층을 선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