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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E Dec 04. 2023

[강피엠] 직장인의 낮술

주로 점심시간에 이루어지는 작은 일탈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아주 중요하다. 하루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점심에 뭘 먹는지가 어쩐지 나의 회사 생활을 드러내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 인생 첫 직장에서의 첫 점심을. 어쩌면 그때의 그 점심 메뉴가 내 앞날을 미리 예견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사수였던 팀장님은 순댓국 마니아였다. 사실은 술 마니아인데, 술 먹은 다음 날에는 항상 순댓국으로 해장했기 때문에 순댓국 마니아가 되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순댓국보다는 순댓국 국물 마니아인 것 같지만. 팀장님은 항상 순대만 있는 순댓국을 특으로 시켜서 밥을 말지만 밥과 순대는 거의 먹지 않고 국물만 그렇게 꿀꺽꿀꺽 마셔댔었다. 누군가 아메리카노 대신 순대국리카노를 만들어 팔았다면 매일같이 테이크아웃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날도 그랬다. 적당히 부푼 가슴을 안고 출근했던 대망의 첫 출근 날의 점심도 순댓국이었다.


    "신입도 왔는데, 점심은 다 같이 먹을까?"라며 팀원분들과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던 팀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드디어 나도 직장인의 점심시간을 제대로 가져 보는구나, 직장인스러운 점심시간을 보내 보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직장인은 역시 순댓국이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팀장님이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은 막사를 한 잔 주셨다. "네? 점심시간인데 술인가요?" 팀장님은 웃었다. 



    정말 내 앞날을 예견한 것 같다. 그 후로 몇 번의 이직을 했는데, 항상 낮술 좋아하는 상사들을 만났으니까. 얼큰하게 취한다기보다는 딱 좋게,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냥 아무 날도 아니지만 한 잔 할까 싶어서 그렇게 한 잔씩들 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좋았다. 


    오예에서도 가끔 낮술을 할 때가 있다. 오예에서의 낮술은 점심 메뉴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맞아 다 같이 점심을 먹게 될 때 "한 끼를 먹더라도 맛있는 걸 먹자"는 대표님의 취지에 따라 메뉴를 고르게 되는데 그 메뉴가 술을 부르는 경우 반주로 한 잔씩 한다.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오고 가는 그 한두 잔의 술에서 어제 했던 일들을,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응원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다 알잖아." 느낌의 시간들이랄까. 술을 잘 먹고 못 먹고의 차원이 아니라 서로 일 하는 사이로 만났지만 소소하게 엮여 있는 그 시간들의 분위기가 좋다. 그 분위기 속에 보고 느끼는 인간적인 면모들이 좋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내 직장에서의 낮술 시간들을 좋아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 시간들을 좋아할 것이다. 소제목에 작은 일탈이라고 썼지만, 꽤 신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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