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을 부유하고 있다가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이는 수면 위로 올라갔다. 숨을 고른 후 바라본 세상은 마치 예전에 왔던 곳인 듯 낯설지 않았다. 바다의 물기를 머금은 돌멩이가 옹기종기 모여 작은 집의 문 앞을 지키고 있다. 돌 틈 사이로 부는 강한 바람에 꼭 붙어있자며 돌멩이들이 서로 결속력을 다지는 듯하다.
긴 해안가를 지나며 본 바다는 구름 너머에 경계 없이 어우러져 있었다. 아마도 바다의 끝이 있다면 저곳이 된다면 좋겠다고 바랐다. 돌멩이로 쌓아 올린 탑이 기특하게도 쓰러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소원을 비는 이가 있기를, 무너질까 염려되는 마음에 등을 돌려 길을 나섰다.
시내로 들어서자 높은 빌딩과 호텔 건물이 보인다. 몇몇 군데는 아직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걸 보니, 시멘트 내음이 가득한 건물이 더 들어설 계획인가보다. 버스를 타고 일부러 종점에서 몇 정거장 전에 내려서 골목을 걸었다. 이어폰을 들으며 걷고 있는 소녀가 보인다. 어떤 노래를 듣고 있는지 고개를 숙인 채로 노래에 온 집중을 쏟고 있는 듯하다. 소녀는 익숙하게 초록불이 바뀌는 타이밍에 맞춰 건널목을 건너간다. 그 뒤를 따라 걷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꺾었을 때 어디로 갔는지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거리는 고요해지고, 몇 대의 자동차 불빛이 텅 빈 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지나갔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 공허함을 달래줄 뭔가가 필요했다. 소녀의 발걸음에 맞춰 이어폰 속 듣고 있는 음악을 유추하는 수수께끼를 풀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갈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지나온 길을 걸어가는데 작은 세탁소 옆 빌라를 보자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중학교 때 내가 살던 집이었다.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불이 밝혀있었고, 텔레비전에선 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나는 익숙한 소음을 찾아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사라진 것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또 내일이 지나면 변할 것을 안다. 점점 누군가를 통해 듣게 될 과거의 시간이 응축되어 간다.
어느덧 한참을 걷다 보니 처음에 왔던 바닷가 앞에 다다랐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물속 깊이 가라앉은 곳엔 오래된 컴퓨터가 있었다. 뿌연 먼지를 손으로 닦아내자 어릴 적 나를 닮은 지금의 내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시간의 경계가 자유로운 곳에 물건을 그대로 두고서 다시 어딘가로 헤엄쳐간다. 문득 과거를 떠올릴 때 이날이 오래도록 기억 속에 머무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