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발자취

by 오옐

어느 순간 서울에 자취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10년간 다섯 번의 이사를 하면서 신월동에서 연희동을 지나 어느덧 지금 사는 동네에 온 지도 4년이 되어간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새로운 동네를 찾아 미로 같은 골목에 자리한 집을 찾아다닌다. 서울이란 거대한 우주에서 작은 깃발을 들고 둥둥 떠다니는 외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아직 작은 깃발이라 힘없이 나부끼지만 어디엔가 꽂은 채 살아갈 수 있는 나의 지역. 이사를 하고 나서 며칠은 집으로 가는 길이 어색하고 낯설다. 방에 놓인 가구와 물건도 새로운 공간과 인사를 나누기엔 시간이 짧았는지 서먹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가구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 원래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열심히 나의 손을 보태고 대화를 건네면서, 친해지는 시간 끝에는 익숙함이 자리하게 될 테니까.

원룸에서 나와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약속이나 한 듯 서로 간의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진다. 앞사람이 먼저 내리고 나면 얼른 닫힘 버튼을 눌러야 할 것 같다. 저분은 언제부터 여기에 살았던 걸까, 이마트 배송 차가 늘 앞에 주차되어 있던데 배송일을 하는 분일까. 서로에 대한 정보는 몰라야 할 비밀처럼 굳게 잠가놓고 어쩌다 마주치면 머쓱하게 인사도 생략하고 지나쳐간다. 내 집에 들어가서야 오늘 하루 중 가장 깊은숨을 내쉰다. 어쨌든 서울의 한 공간에 숨을 내쉬고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새롭게 이사를 하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동네 주변에서 앞으로 자주 찾아갈 마트, 식당, 빵집, 영화관 등 나만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일이다. 신월동에 살 때는 근처에 있는 김포공항에 가서 쇼핑하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닌데 공항으로 가는 기분은 묘하게 설렜다. 연희동에 살 때는 사러 가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예쁘고 감성적인 카페 골목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골목골목에 자리한 작은 카페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평소에는 찾아오기 힘든,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장소들을 발견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터득해 갔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홍제천을 걸으며 한강이 보이는 지점까지 걷는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거나 달리는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각자의 고된 하루를 토닥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람들을 마주하는 시간이 너무 적었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찾아간 장소에서도 물건을 사고 나면 집으로 돌아오기에 바빴다. 조금만 걸으면 한강을 보며 멍하니 생각을 흘려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위로가 되어준다. 앞으로 어떤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이 처음 살아보는 동네일지라도 점점 친해지는 시간을 통해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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