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뒤죽박죽 엉키고 희미해져 가는 내 믿음직스럽지 못한 기억력 때문에 써야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친구들에게 여행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면 나는 절대 가고 싶지 않지만 듣는 걸론 너의 여행 이야기가 재밌다며 블로그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로 쓰기 시작했다.
관심을 얻을 거라는 기대도 바람도 없었다. 손으로 쓰기 귀찮으니 키보드로 쓰고 사진 정리하기 좋으니 인터넷 플랫폼에 쓰자라는 대수롭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시작했고 실제로 블로그는 나만 들락 거리는 개인 일기장처럼 되어버렸다.
그다지 성실하지도 열정이 넘치는 타입도 아닌지라 마음 내킬 때면 들러 쓰는 여행기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고 결국 완성 짓지 못하고 다음 여행지 이야기로 넘어간 미완료 여행기들만 늘어나게 되었다. 상관은 없었다. 누군가 마무리를 지어달라는 독촉이 있던 것도 내가 마음이 급한 것도 아닌 그저 나의 개인 기록장이니 쫓기듯 써댈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그럭저럭 유지하던 블로그를 멈추고 브런치로 넘어오게 된 것은 플랫폼의 성격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단 회의감과 밀려드는 업자들의 접근에 진절머리가 났던 탓이었다. 하지만 가장 매력 있게 느껴진 건 브런치 북이었다. 실제 책을 발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책처럼 묶이는 그 형태가 탐이 났다. 그래서 블로그에 쓰고 있던 여행기를 멈추고 브런치에서 새롭게 미얀마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 욕심은 단 하나였다. 브런치 북을 발간하는 것. 그리고 두 달 만에 그 욕심이 이뤄졌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건 몇 분의 구독자님, 그리고 몇 개의 라이킷이 만들어낸 힘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었고 처음엔 무심하게 지나치기도 했지만 누군가 나의 글을 봐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진 것인지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귀찮은 날도 있었지만 어제 글에 라이킷을 눌러준 사람들 중 혹시 한 명 정돈 다음 내 글을 궁금해할지도 모른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착각의 힘으로 다음 편, 다음 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진짜 좋아서 라이킷이 눌러진 것인지 습관처럼 눌러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핸드폰 진동 알람이 울릴 때의 그 설렘은 분명 글을 쓰게하는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써놓고 다시 돌아보면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의 글이지만 그래도 완결이 되어 그토록 탐나던 브런치 북 발간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되었다.
성실하지 못한 게으름뱅이에게 완결이란 두 글자는 여전히 낯설지만 꽤 기분 일인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건 저의 성실함 때문에 얻어낸 결과물이 아니란걸 잘 알고 있습니다.
매번 두 번의 긴 진동 알람을 울릴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덕분에 멈추지 않고 힘을 얻어 쓸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