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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윤 Oct 19. 2020

홋카이도 2.
'러브레터'의 흔적 찾기

영화 러브레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 관심 관심이 조금도 없던 내가 일본 영화를 처음 본건 고등학교 일본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틀어주신 영화 러브레터였다. 영화는 몰라도 "오겡끼데스까"는 너도 나도 다 아는 유행어였고 나도 그저 오겡끼데스까 영화 정도로 인식하고 있던 터였다.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일본 영화였다. 하지만 러브레터는 이제껏 듣도 보도 묘한 매력으로 내 마음을 휘어잡아 버렸다. 그 뒤로도 수십 번을 보았고 재개봉 당시 극장에서 관람까지하며 나의 러브레터 사랑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조금 식어 가려던 찰나에 극장에서 재상영작으로 다시 보게 되며 TV나 모니터로는 느낄 수 없던 또 다른 감동에 다시 러브레터에 대한 애정이 솟아올랐다. 아직도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할 때 눈이 밟히는 뽀드득뽀드득 소리로 느꼈던 전율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홋카이도를 방문했을 당시에는 사실 너무 준비 없이 떠났던 여행이라 홋카이도가 러브레터의 촬영지였다는 걸 한참 뒤에야 떠올려냈다. 미리 떠올렸다면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가거나 인터넷으로 촬영지등을 물색하고 떠났겠지만 너무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둔 채 떠났던 여행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C언니는 어디에 가고 싶은지 계속 나의 의사를 물어왔고 홋카이도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머리도 하얀 백지장 같던 때였다. 거기다 지금처럼 스파트폰도 없을 시절이라 더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다 한참 뒤에 생각난게 러브레터의 촬영지가 홋카이도란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어디에서 촬영한 것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C언니에게 혹시 러브레터란 영화 아시냐고 물었지만 일본에선 인기가 없던 영화였고 95년작이다 보니 아무리 홋카이도 사람이라도 도통 모르겠단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무리겠구나 싶어 나는 빨리 마음을 접으려 했지만 처음으로 내가 가보고 싶다고 말한 곳이란 이유로 언니와 언니의 남편 D상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오타루에서 촬영을 했었단 사실까지는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마침 오타루는 홋카이도 내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였고 허탕을 친다 해도 관광하기에 좋겠다는 이유로 언니네 가족과 나는 오타루로 향했다. 오비히로에서 오타루는 정말 상당히 먼 거리였고 유일하게 운전이 가능한 C언니 혼자 그 긴 거리를 운전해야 했지만 내게 찡그린 얼굴 한번 보이지 않았다. 



오타루에 도착 후 오르골 박물관이라던가 유리 공예 샵 등을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역시나 내 마음은 러브레터의 흔적 찾기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혹시나 싶어 그쪽 상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토박이들 조차 그 영화 이름은 생소하다며 2000년대 초반에 한국 사람들이 어떤 영화 때문에 엄청 관광 왔던 적은 있지만 그 영화인진 잘 모르겠다며 그리고 너무 옛날이라 그때 그 한국인들이 어딜 찾아갔는지는 모르겠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맛있어 보이는 대게를 팔던 홋카이도 토박이 아저씨도 러브레터를 모르셨다.


아무리 묻고 또 묻고 다녀도 홋카이도 사람들에게 "러브레터"란 영화는 생소하다는 반응뿐이었다. 더 이상 D상과 언니를 고생시킬 순 없어 러브레터의 흔적 찾기는 그만 두기로 했다. 이 먼 곳까지 데려와 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고 오타루는 러브레터 흔적 찾기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으니까 


아이 누 민족의 음악소리가 계속 흘러나오던 특이한 카페 겸 게스트 하우스


그 뒤로 산비탈에 3층짜리 집을 짓고 살았다는 옛날 대부호의 집을 구경한다던가,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 누 민족의 음악을 할 줄 아는 게스트 하우스면서 카페이기도 집을 방문해서 맛있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던가 하면서 러브레터의 흔적 찾기 대신 더 알찬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온 뒤, 그것도 무려 3년이나 지나 나는 내가 러브레터 흔적 찾기를 성공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는데 바로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지어졌던 3층짜리 그 대호화 저택이 바로 영화 속에 나왔던 장소란 사실을 3년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전 약혼녀가 남자의 어머니 집에 가서 졸업앨범을 보던 그 집이 바로 대부호의 집이란 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그 집을 보는 감흥이 달랐겠지?


러브레터 촬영지


그저 우와~ 부자 집이라 으리으리하네. 신기하게 지어졌네. 따위의 단순한 감상만이 아니었을 텐데. 차라리 조금만 더 빨리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좀 더 기억 속에서 그때의 그 흔적과 대조하기 더 쉬웠을 텐데.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왔을 텐데. 따위의 후회가 밀려왔지만 뒤늦게나마 러브레터의 흔적 찾기에 성공했었단 사실을 알게 된게 어디던가. 그렇게 내 러브레터 흔적 찾기는 실패 아닌 성공? 성공 아닌 실패로 남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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