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해외여행은 10월 15일에 떠났던 일본 홋카이도였다.
보통 겨울에 떠나는 홋카이도를 가을의 한가운데에 뜬금없이 1주일을 다녀온 건 굉장히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무조건 1년은 버텨야 된다는 생각으로 다니던 회사는 일명 악덕기업이었다. 6개월을 다녔지만 공휴일, 주말을 포함해 쉬어본 건 1주일이 안됐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막차라도 타고 가면 다행이었다. 회사에서 회식일도 하는 날이면 회식이 끝나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몇몇 동료들과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1년 버티기는 실패하고 6개월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퇴사했다.
다행히 운 좋게 다음 회사가 금세 잡혀 퇴사일과 새로운 회사 이직일 사이에 1주일이 텀이 생기게 되었다. 6개월 다니며 몸도 마음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고 1주일 푹 쉬고 다음 회사를 출근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그때 회사 상사분께서 뜻밖의 제안을 해주셨다.
"윤오 씨, 해외여행 가봤어?"
"아니요."
"그럼 회사 관두고 시간 빌 때 해외여행 한번 다녀와 봐."
여행이라... 20대의 나는 놀 줄도 몰랐고 여행에도 인색한 사람이었다. 여행 갈 시간과 돈으로 집에서 푹 쉬고 먹고 하는 게 더 낫지 않나?라는 게 그 당시 내 지론이었다. 금전적으로도 물론 여유가 없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거 같다.
"윤오 씨, 이제 또 취업하고 나면 돈이 있어도 여행 다니기 어려워, 그리고 젊을 때 세상 구경을 하고 다녀야 식견이 넓어지는 거야. 마지막 월급 받는 걸로 과감하게 여행 한번 다녀와"
"전 컴퓨터 바꾸려고 했었는데..."
"에이 아냐, 컴퓨터 100대보다 더 값어치 있어. 장담해"
컴퓨터 100대보다 값어치가 있다라, 그래? 그렇다면 한번 가보자. 얇고 팔랑대는 귀는 그렇게 컴퓨터에서 해외여행으로 노선을 틀었다. 여행이라곤 방학 때 시골 할머니 댁 내려가는 것 말고는 친구들과 수도권 인근을 돌아보는 정도밖에 해본 적이 없는 여행 무지인이었다. 그마저도 내가 계획하고 알아보는 게 아니라 가자면 가자는 대로 졸졸졸 쫒아갔다 오는거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진짜 무지인. 막상 해외를 가야지라고 생각은 했으나 어딜 가야 할지 티켓팅은 어떻게 해야 할지 조차 아무런 계획도 지식도 없었다.
그때 마침 2년 전부터 일본 사이트에서 만나(아직도 내가 어떻게 이 사이트에 흘러들어 갔는지 미스터리이다.) 이메일을 주고받던 한류팬이던 C언니가 몇 번이나 홋카이도 본인 집에 놀러 오라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지금 같으면 그런 말이 생각났다고 해도 인사치레겠지 하면서 고려해보지도 않을 말이겠지만 그땐 무슨 생각인지 언니에게 "저 홋카이도 언니 집에 정말 놀러 가도 될까요?"라고 염치없는 메일을 보냈다. C언니는 언제든 환영이라며 빈 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윤오상을 기다린다는 답메일이 바로 도착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인터파크 티켓에서 홋카이도행 JAL 항공사 티켓팅을 속전속결로 해치워 버리고 여권신청을 만들기까지 모두 떠나기 일주일 전에 감행한 일이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준비된 여행이어서 인지 꽤나 무지한 여행이었다. 공항에 출발 2시간 전에는 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떠나는 아침까지 몰라 막판에는 몇만 원을 내고 택시를 타고 간신히 비행기 출발 1시간 전에 도착해서 가까스로 비행기에 올랐고 언니에게 집에서 만든 식혜 맛을 보여주겠다고 챙겨 온 얼린 식혜병을 기내 수하물에 들고 갔다가 엑스레이에 걸려서 내놔야 했다. 어디 그것뿐인가. 면세점이 출국장에만 있는 사실을 모른 채 입국장에서 면세점을 하염없이 찾아댔던 바보 중에 바보였었다. 일본에 입국해서도 머물러야 할 곳 주소를 알아오지 않아 입국심사대에서 걸려 하마터면 오자마자 한국으로 되돌아갈 뻔하기도 했다. 전화번호라도 알아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를 데리러 온 C언니 덕에 다행히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2년 동안 메일로만 주고받던 언니의 얼굴을 사진이 아닌 실물로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언니의 어머니와 어린 아들까지 함께 온 가족이 나를 마중 나와 주었다. 언니네 집은 오비히로라는 홋카이도에서 더 외곽지역, 공항에서도 차를 끌고 2시간은 운전해서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언니는 공항 마중을 시작으로 내가 있는 1주일 내내 나를 위해 하루 종일 운전대를 붙잡고 이곳저곳 움직이고 다녔는데 인터넷으로만 알던 사람을 본인의 집에 들이고 1주일 시간을 통으로 비워두고 갖은 노력을 했던 언니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여행을 다니며 참 내가 여행 인복이 많구나.라고 종종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내가 기억하는 고마운 사람들도 내가 잊은 고마운 사람들도 넘쳐날 만큼 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보호받고 배려받고 위로받았었다. 하지만 역시 그중에서 역시 C언니를 서슴없이 제일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잊히지 않을 만큼 특별했던 첫 해외여행의 기억을 만들어준 그녀의 그 극진한 노력을 나는 평생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