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가야할 때와 놓아줄 때

by 오융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너는 내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사람인 거 아니야?

너. 변했구나.


오랜만에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반가운 이야기이기를 바랬지만, 결국은 무엇인가를 부탁하는 연락이었다. 한 번 시간 낸다고 될 일이 아닌, 아마도 한 달 이상이 걸릴 장기 프로젝트를 도와달라는 연락.

그 사람의 기준에서는 당연히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담주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지만, 사실은 누가 들어도 부담될 수밖에 없는 부탁이었다. 한 달 이상, 매 주말마다 몇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

수차례를 고민하다 완곡하게 거절의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아무런 답장도 오지를 않았다.

하지만 답 없는 그 대화창에서 나는 저 메시지들을 읽어버렸던 것 같다.

예전에는 변함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한결같고, 든든한. 내가 언제 찾아봐도 똑같은 그런 사람.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그런 사람.


그런데 이제는,

변함없는 사람이라는 건 어쩌면 나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집으로 돌아가면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라던가,

군말 없이 심부름을 척척 해주는 동생이라던가,

고민을 들고 찾아갔을 때 늘 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시던 선생님이라던가.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그 사람의 수많은 모습 중에서,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을 찾았던 건.

그래서 내가 필요한 순간에 내가 원하는 모습이길 바라는 건 아니었던 건지.

나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내 주변 사람들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내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태도.



2016. 서촌. 변함 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누구나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제는 빨간색을 좋아했던 사람이 오늘은 파란색이 좋아질 수도 있는 일이고

집에서 나를 챙겨주던 엄마가 이제는 한 사람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 그래서 더 이상 나를 챙겨주지 못하는 것도.

마냥 어린아이 같던 4살 터울의 남동생이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이 된 것도.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며 이상을 격려해주시던 선생님이, 안정성도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라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시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매 번 부탁을 들어주다가, 이제는 거절할 줄도 알게 된 것.

학생으로 마냥 응석받이 같던 내가 내 시간이 중요한 직장인이 된 것,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사람과 삶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게 된 것도.

되어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인 만큼, 변화는 당연한 일 일거다.


물론 머리로는 알면서도, 주변 사람의 변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가 않다.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내가 필요한 순간에 그렇게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되어가는 존재로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삶의 변곡점에 서 있는 모습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것.

그리하여 내 고정관념안의 그 사람을 보내줄 수 있는 것.

한 사람이라는 존재로서,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존재일 그 사람을 위해서.

어른이 되어가는 나에게는 그런 태도가 더 필요할 테니까.


2016 강남역. 이 거리를 걷는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다르다.

예전에는 마냥 부정적으로만 느껴졌을 ‘변화’와 ‘이별’이라는 말이

또 다른 성숙과 성장을 위한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걸 보니

그래도 어제보다는 오늘의 내가, 조금은 더 성장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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