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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융 Feb 03. 2018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날

위로가 필요한 순간, 잠 못 드는 밤

잠을 못자고 뒤척이는 건 무척 드문 일이다. 일 년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랄까. 기절하듯 잠들어버린지 몇시간이 되지 않아 새벽에 깨어나 뒤척이길 어언 세시간 째. 내일은 중요한 결혼식이 있지만 다시 잠드는 걸 포기해 버렸다. 그냥 마음껏 이 우울감을 느껴야겠다고 생각하는 밤.


과정의 시간, 새벽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경계의 시간. 새벽.

평소라면 자느라 인식하지 못할 어제와 오늘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날짜상으로는 오늘에 속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 어제에 속해있는 애매한 시간.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것 같은 ‘중간’ 과정 같은 시간.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간.


불완전한 시간에 더욱 더 불완전한 나를 들여다 보는 중이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걸까. 헤드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훌쩍일 만큼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속상한걸까.

요근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계속해서 생각, 생각 중이다.


가끔씩 이렇게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을 때가 있다. 존재의 본질적인 고독이랄까.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사실 적당히 우울하고 어둡기도 한 사람인데, 너무 밝은 모습으로만 살아가려 하다보니 튀어나온 내면의 또다른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나도 나고, 저런 나도 나다. 

심리학을 전공하기 전에는 몰랐다. 내 안에 이토록 많은 내가 있을 줄은. 그리고 그 모든 내 모습이 나임을.


무엇을 해야만 하고, 되어야만 하는 내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지 않고, 되고 싶지도 않은 나.

늘 밝고 긍정정인 내가 아니라, 우울하고 나약한 나.

그런 나도 나라는 걸.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아니 꼭 사회생활이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켜야 하는 암묵적 룰이 있다. 불평하지 말 것, 웃는 얼굴로 대할 것,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 (윗사람에게)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들을 것 등등. 밖에서는 모든 나를 드러내며 살 수가 없다. 나의 일부만을 전부라고 내보이며 일종의 사회적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사는 셈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유독 답답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소진된 느낌.


인정받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힘든 여정은 끝이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려 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끊임없이 신경 쓰느라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다가 결국 화를 내거나 분통을 터뜨리고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감정들이 나 자신을 향할 때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니까 남들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거꾸로 그 감정이 곪아터져서 밖으로 튀어나올 때, 배우자나 자녀에게 별안간 소리를 지르거나 매몰찬 말을 던지기도 한다. 두 경우 모두, 그 감정이 밀려가고 난 후에는 소진된 느낌, 혼란스러운 느낌, 깊은 고독의 느낌 속에 남겨진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中


잠 못드는 이 순간. 그냥 보듬어본다.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툭 튀어나온, 적당히 우울한 나를. 무언가라는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아낸다면 더 좋겠지만, 그냥. 모르는 대로. 잔뜩 심통이 난 나를 다독이는 중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누군가에게서도 받을 수 없는, 나에게 딱 맞는 위로를.


고생했구나. 힘들었나 보구나. 위로가 필요한 그런 날이구나. 그냥.


그냥 그런 날이다. 잠 못드는 밤. 마음이 답답한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누구에게서도 위로받을 수 없는 날. 오직 나만이 위로할 수 있는 날.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지 않음으로 해서 불행해진 사람은 별로 발견되지 않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불행해진다.
- 명상록 中


어찌됐든 오늘의 해는 뜨고 있고

몇 시간 후면 나는 결혼식에 가야 한다.


어찌됐든 오늘은 시작될 것이다.

다시 아무렇지 않게.


2018.02.03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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