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간직한 공주들, 그녀들이 꿈꾸는 세상
나의 어린 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그만큼 디즈니를 좋아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그날 보고 싶은 비디오테이프를 차례차례 돌려 보았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종종 봤었다. 동심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를 품어주었던 동화의 세계는 변하지 않은 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아이였던 나와 그런 나를 사랑했던 젊고 미숙한 부모와, 내가 가졌던 모든 소중한 감정들과 그렇지 않은 기억들 모두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내가 애정하는 디즈니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감상, 잡다한 이야기들이다.
떠나고 싶어 하는 여자들
디즈니의 여주인공들은 시작부터 다른 세계로 떠나기를 꿈꾼다. 그렇다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언제나 보아온 세상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함과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거기에 머물기를 원하진 않는다. 이 여자들은 언제나 남다르고,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소망한다. 그래서 쉽게 이해받지 못한다.
'미녀와 야수'의 벨은 작은 시골 마을의 처녀로 아름다워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평판은 '어딘가 이상한 애' 정도로 취급받는 등 썩 좋지가 않다. 책 읽기를 좋아하며, 공상이 취미이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발명가인 벨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독특하고 웃기다고 생각한다. 하나같이 ‘우리와는 다르다’고 말하는데, 그 말에는 경외가 담겨 있다. 감탄하지만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는 사냥꾼 개스톤을 무례하고 천박하다며 싫어하고, 당연히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하고 혼자 멋대로 결혼식 준비부터 미리 해놓은 다음에 집에 쳐들어와서 청혼을 하는 그의 오만함에 질려 부르는 노래가 이것이다.
Madame Gaston
마담 개스톤이라니
Can't you just see it?
보면 모르겠나요?
Madame Gaston
마담 개스톤
His little wife!
그의 귀여운 아내!
No sir, not me
절대 싫어, 나는 아냐
I guarantee it
나는 확신할 수 있어
I want much more than this provincial life
난 이 시골의 삶보다 더 나은 무언갈 원하고 있다고
I want adventure in the great wide somewhere
어딘가 넓은 세상에서 모험을 하고 싶어
I want it more than I can tell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이 원하고 있어
And for once it might be grand to have someone understand
언젠가는 누군가 날 이해할 거야
I want so much more than they've got planned
난 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고
다른 마을 처녀들은 부러워하는, 개스톤과 결혼해 자식들을 낳고 사는 평범한 삶을 벨은 거부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삶과는 좀 많이 동떨어져 있다.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할 만하다. 다 큰 처녀인데 왕자가 나오는 동화를 붙들고 낭만적인 꿈에 젖어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녀 시절에 가질 법한 환상을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떨쳐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디즈니의 여자들은 꿈을 현실로 이룬다. 왜? 동화니까. 우리가 사는 현실엔 물 없이도 사는 장미와 불을 뿜는 용이 없지만 벨이 사는 마을엔 야수로 변한 왕자가 사는 성이 있다.
하지만 벨이 원한 건 단순히 백마 탄 왕자만은 아니다. 이 시골에서의 생활은 단조롭고 지겨운 것이다. 젊은이들에겐 환상과 모험이 필요하다. 그 피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 현실과 타성에 젖기 전의 그 뜨거운 피는 권세 있고 나이 든 사람들도 부러워하는 것이다. 젊음이라는 뜨거움, 먼 곳에의 그리움을 느끼는 그 마음을.
왕자가 찾아오기는커녕 벨은 아버지의 실종으로 야수의 성까지 가 그의 포로가 된다. 처음엔 두려워하나 거칠지만 속은 따뜻한 야수에게 점차 마음을 연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환과 개스톤의 계략으로 야수와 떨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실의에 빠진 야수가 개스톤 일행에게 공격당할 때 직접 말을 타고 달려와 그를 구해내기까지 한다. 호기심 많고 귀여운 몽상가였지만 당차고 용감한 여성이 되어 왕자를 마법에서 풀려나게 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미녀와 야수에서 하나 더 느낀 것은 작은 마을의 무서움이다. 초반에 정겨운 고향 마을의 분위기로 아침에는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노래했던 이웃들이, 개스톤의 선동으로 인해 한순간에 무기를 들고 성을 습격하는 폭도들로 변한다.
겉으로는 친근하게 대할 수 있었지만 벨과 그녀의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결국 겉도는 인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 편이 되어줄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개스톤과 마을 사람들은 벨 같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낭만적인 꿈을 간직한 사람들은 현실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살기 힘들다. 그 세계에 적응하거나, 아니면 꿈꾸던 세계로 편입되는 수밖에 없다.
인어공주도 마찬가지다. 물속에서만 살던 애리얼은 바깥 세상을 꿈꾸고 동경한다. 아버지가 위험하다고 화를 내며 막을수록 그 마음은 더욱 커진다. 왕자 에릭을 사모하는 마음도 그가 누리는 인간 세계를 그리는 마음에 더 가깝다. 당신 삶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사는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part of your world) 노래하는 것이다.
순진한 공주는 유년의 둥지를 떠나는 대가로 혹독한 성인식을 치른다. 자신과 애인, 아버지를 포함해 바닷속 세상까지 다 빼앗겨 버릴 뻔한 위기를 넘기고 결국엔 원하던 세상을 얻는다. 인간이 되는 것뿐 아니라 인어 가족들에게도 받아들여지면서 두 세계의 중간 지점에 무사히 안착하게 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결과가 잘생긴 왕자와의 결혼으로 끝나는 것은 시대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여겨지는 것이 1995년 작인 포카혼타스이다. 포카혼타스는 일단 동화에서나 나오는 공주는 아니다. 역사 속 실재했던 인물인 만큼 리얼리티가 좀 더 살아 있을 수밖에 없다.
포카혼타스는 인디언 추장의 딸로 혼기가 되자 아버지는 가장 용맹한 전사인 코쿰과 혼인하기를 권한다. 하지만 그녀는 내켜 하지 않는다. 코쿰은 좋은 남편감이지만 포카혼타스에게는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젊은 그녀는 또 다른 세상을 원한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아직 모르는데, 이대로 주저앉기는 아깝다는 것이다.
What I love most about river is
내가 강을 사랑하는 이유는
You can't step in the same river twice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기에
The water's always changing, always flowing
강물은 항상 변하고 흘러가지만
But people, I guess can't live like that
사람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어
We all must pay a price
우리는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해
To be safe, we lose our chance of ever knowing
안전해지기 위해,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지
What's around the riverbend
저 강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Can I ignore that sound of distant drumming? For a handsome sturdy husband who builds handsome sturdy walls
먼 곳에서 울려오는 저 북소리를 외면하며 살 수 있을까? 좋은 집을 지어 줄 성실한 남편을 위해
And never dream that something might be coming
영원히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걸 꿈꾸지 않는 채로
Should I choose the smoothest course? Steady as the beating drum
잔잔히 울리는 북처럼 편한 길을 택하여야 하는 것일까
Should I marry Kocoum?
코쿰과 결혼해야 하는 걸까
Is all my dreaming at an end?
나의 꿈은 모두 끝나버린 채로?
Or do you still wait for me, dream giver
꿈을 주는 이여, 저 강 너머에서
Just around the riverbend?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나요
모험가 존 스미스를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결국 그와 함께하지는 않고, 포카혼타스는 남는 것을 택한다. 스미스가 탄 배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포카혼타스가 그와 작별하는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다. 새로운 세상을 만났지만 그에 속한 남자와 사랑을 이룸으로써 그 세상에 편입되는 것으로 끝나는 디즈니 여자들의 행보를 따르지 않는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happily ever after)의 신화는 이제 옛이야기인 것이다. 포카혼타스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건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생은 모험이고 삶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재조명되는 빌런들
수많은 창작물들을 보면 주인공보다도 중요한 것이 빌런이라는 캐릭터이다. 소위 말하는 안타고니스트(antagonist)의 부류에 속하는, 빌런은 매력적이다. 누가 생각하든 옳고 당연하지만 고리타분한 길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과 선이라는 틀을 벗어나 있고 예측할 수 없기에 재미있으며 보는 사람들에게 해방감을 준다. 빌런이 매력적일수록 극은 더 빛난다.
다크 나이트에서도 주인공은 배트맨이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것은 조커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이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은 라울이며 에릭은 빌런에 가깝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은 불우하고 끔찍하며 잔학한 유령이지 곧고 잘생긴 청년 자작이 아니다. 사람들은 빌런을 원한다. 그들의 무지막지함과 포악성을, 정제되지 않은 욕망 그 자체와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 열광한다.
디즈니의 빌런들도 하나같이 다 매력적이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 디즈니 원작의 실사 영화화가 활발히 진행되는 지금, 빌런들을 원톱 주연으로 내세운 작품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마녀를 연기한 영화 ‘말레피센트(2014)’가 그중 하나이다.
2021년 개봉한 영화 ‘크루엘라’도 디즈니 ‘101마리 달마시안’에 나오는 빌런 크루엘라 드빌을 주연으로 하고 있다. 101마리 달마시안부터가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니만큼, 크루엘라 드빌도 포카혼타스와 마찬가지로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전통적인 악역은 아니다.
크루엘라 드빌은 달마시안을 키우는 주인공 부부 중 아내의 동창생으로 등장한다. 모피를 사랑하며, 줄담배를 피우고 시도 때도 없이 부부의 집을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무례한 인물로 그려진다.
반반으로 나뉜 머리 색깔과 깡마른 몸에 모피를 두른 파격적인 패션, 거기다 담배까지. 그 당시에는 이상하고 희한한 여자로 취급당했겠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패션 잡지에서 금방 튀어나온 사람 같이 독특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조금 튈지라도 밋밋하거나 건조하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그걸 개성이라 부르고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한다.
크루엘라는 주인공의 아내인 아니타와 여러 모로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특정한 직업이 없이 결혼 후에는 전업 주부로 살고 있는 것 같은 아니타와는 달리 혼자 살며, 재력이 있고 부유하다는 암시가 여러 번 나온다. 아니타는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로, 당연히 담배 같은 것은 일절 피우지 않고 남편을 착실히 내조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대변하는 듯한 인물이다.
윤기 있고 통통한, 정상적인 미형의 캐릭터로 나오는 아니타와는 다르게 크루엘라는 해골처럼 마른 데다 모피에 환장을 하고 비싼 가방이며 장신구를 달고 다니는 사치스러운 여자로 묘사된다. 거기다 남의 집 강아지를 탈취하는 등의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행동을 저지른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는 1960년대로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사는 독신 여성, 담배를 피우고 값비싼 모피 따위를 걸치는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크루엘라라는 캐릭터에 투영되어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빌런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악당들의 숨은 매력이 개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는 그대로 끝나지 않고 재생산되며 계속 이어진다. 크루엘라가 101마리 달마시안의 악역이었다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말이다.
디즈니는 영원불멸할 것이다. 아니 동화는 영원할 것이다. 꿈을 간직한 아이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어 다시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다시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잊고 살았던 동심의 세계를 추억하게 될 테니까. 피터팬에 나오는 웬디의 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어릴 적 보았던 그 하늘의 배를 기억해 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