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잔다란의 장밋빛 시절

당신의 영광으로 나를 이끌어 주오, 음악의 천사여!

by 오작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에 나는 오랫동안 매혹되어 있었다. 매혹적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1910년부터 지금까지 뮤지컬, 영화, 연극 등의 다양한 방면으로 재창조되며 꾸준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명작이다. 세기를 넘어서 이어져 오는 대단한 인기와 성공의 비결은 그 매혹적인 소재와 스토리에 있다(그리고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천재적인 뮤지컬 넘버 작곡 능력도!).

소설은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무희와 극장의 관리인들은 '유령(팬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유령은 미지적이고 공포스러운 존재로 자신의 전용 좌석으로 극장의 5번 박스석을 항상 비워둘 것, 그리고 정기적으로 2만 프랑이라는 거금의 돈을 요구하는 내용의 피로 쓴 글씨로 채워진 편지를 보내는 알 수 없는 인물이다.


한편 공연가에서는 코러스 걸 중 하나에 불과했던 무명 가수 크리스틴 다에가, 어째서 지금까지 눈에 띄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의 아름다운 노래 실력으로 프리마 돈나였던 카를로타를 제치고 메인 여가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실 여기에는 비밀이 숨어 있었는데, 크리스틴은 밤마다 어떤 남자에게 특별한 레슨을 받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앞에 나타났으며, 또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곤 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던 그는 스스로를 '음악의 천사'라고 소개했다.


떠돌이 바이올린 연주가였던 크리스틴의 아버지는 어린 크리스틴에게 음악의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 주었다. 그리고 자기가 죽고 나면 그녀에게 음악의 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가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말한 천사라는 것이다. 크리스틴은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천사를 따르게 되며, 갈수록 일취월장해지는 노래 실력으로 프리마 돈나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게 된다.



Angel of music, guide and guardian

음악의 천사, 안내자이자 수호자여


Grant to me your glory!

당신의 영광으로 나를 이끌어 주오!


Angel of music, hide no longer

더 이상 숨지 말아요, 음악의 천사여


Secret and strange angel!

비밀스럽고 이상한 천사여!



남자는 사실 천사가 아니라 오페라의 유령으로, 에릭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이었다. 에릭은 음악, 예술, 건축 등 각종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나 흉측한 외모로 부모에게조차 버림받은 어두운 인생을 살아왔다.


늘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가진 채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여 유령처럼 은둔하던 그는 크리스틴에게 반해 그녀를 자신만의 마돈나로 만드는 일에 착수한다.

크리스틴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카를로타 대신 무대에 서게 만들기 위해 관계자들에게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이런 유령의 숨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틴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의 대적자가 나타나는데, 젊고 잘생긴 귀족인 라울 드 샤니 자작이다.


소년 시절 크리스틴과 처음 만났던 라울은 오페라 극장에서 그녀와 재회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크리스틴 또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천사, 혹은 유령보단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미남자인 라울에게 끌린다. 분노한 에릭은 크리스틴을 납치하기에 이르고, 라울은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극장 지하에 있는 유령의 미궁으로 향한다.


작중에 등장하며 라울과 동행하게 되는 페르시아인으로 인해 에릭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는데, 에릭은 그 재능으로 한때 페르시아의 왕실에 고용되어 일했다. 자신만의 고문 기구나 새로운 고문 기술을 고안해 내 어린 왕비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던 그 시기에 나오는 단어가 '마잔다란의 장밋빛 시절(Those rosy hours at mazandaran)'이다.

작가가 오페라의 유령에 영감을 받아 쓴 소설 '마잔다란의 장밋빛 시절'

일부 번역판에서는 좋았던 시절, 정도로 오역을 한 경우가 있으나 이는 고유명사로 에릭이 지은 궁전의 이름이다. 마잔다란은 이란의 주(州) 이름으로 지금도 실재하고 있다.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전신이었다. 지도에서 보듯이 마잔다란 주는 카스피 해와 맞닿아 있는 이란의 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유럽 등 서방과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 곳이다. 가스통 르루와 같은 서양인 작가가 페르시아와 관련된 낭만적인 단어를 만들어 내고자 할 때 쉽게 연상할 법한 지명인 것이다.

마잔다란에는 이란뿐 아니라 중동에서 가장 높은 산인 다마반드 산이 있고, 람사르 협약으로 유명한 늪지가 있는 람사르 지역도 마잔다란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문화 유적이 공존하고 있으며, 역사와 낭만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마잔다란인 것이다. 마잔다란의 장밋빛 시절!


지하 미궁에서 에릭은 라울을 붙잡아 두고 크리스틴에게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상자에 그려져 있는 전갈과 메뚜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전갈은 유령과의 결혼, 메뚜기는 모두의 파멸이다. 크리스틴은 음악의 천사라며 자신을 속인 그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 그리고 라울에 대한 애정 가운데서도 에릭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그는 천사도, 괴물도 아닌 나약하고 그래서 더 무너지기 쉬운 인간일 뿐이었다.



Pitiful creature of darkness

어둠의 가련한 피조물이여


What kind of life have you known?

당신이 살아온 삶은 어떤 것인가요?


God give me courage to show you, you are not alone

신께서 내게 용기를 주실 거예요,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해



크리스틴은 그에게 키스를 해준다. 라울을 살리기 위해 유령과의 결혼을 택하지만 에릭은 그런 그녀의 입맞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외면하고 또 자신도 그들을 경멸해 왔던 가운데 유일하게 연정을 바치고 있는 여자가 그에게 내밀어 준 온정에 감동하여, 그동안 집착해 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크리스틴을 그녀가 사랑하는 라울에게로 보내 준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만들어진 천사, 이 가련한 음악의 신은 본인이 아마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크리스틴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독히 사랑하고 있는 거대한 오페라 극장과 함께 최후를 맞게 된다. 최후의 고딕적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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