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진짜좋은거] / 1. 들어가며 -4
태어났을 때 나는 이미 기독교인이었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오 씨 성의 남자 아이였다.
나의 정체성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채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도 동의하지도 못하지만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건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태어난 후 얼마 동안 꼭 필요한 옹알이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누군가가 정해놓은 지식들을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군소리 없이 믿고 외워야 하는 입장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이해하기를 기다렸다가는 빵점을 맞을 것 같아 서둘러서 외웠다.
구구단과 주기도문을 외우고 국기에 대한 맹세도 해야 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굳게 다짐해야 했다.
학교도, 교회도, 집도….
그래서 모든 것이 재미없었다.
재미는 없지만 옳은 길 위로
어딘지 아무도 모르는
그저 가라고 하는 저 높은 곳을 향해 열심히 걷고 걸었다.
이해하는 척도 했고
이해했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그래도 난 멈추지도 반대로 향하지도 않았다.
그럴 의지도 용기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