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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Aug 12. 2018

헤매는 날들

 어쩌다 보니 목수가 되어 있다. 일생의 꿈은 그림으로 밥을 지어먹는 사람이었는데 그리 되지 못했다. 내일 일하러 간다. 영종도 근처에 있는 현장이 잡혔다. 일산 현장에서 만난 팀장이 점잖아서 한 번 더 그와 일해보기로 했다. 집에서는 좀 멀다. 노가다하면서 출퇴근하는 맛을 알아버렸으니 이제 먼 곳으로 돌아다니는 게 싫다. 낮에 힘들게 일해도 밤이면 내 방과 내 컴퓨터와 내 책들과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와 같이 잠을 잔다. 코를 고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지극히 평범한 이런 생활이 '노가다'에는 없다. 낯선 중년 사내들의 코 고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수시로 뀌어대는 민망한 방귀소리도 없고 아침이면 번갈아가며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생활.





1년 반을 이곳저곳으로 떠돌며 살았다. 푼돈에 가까운 일당을 받아 아내와 아이와 앵무새를 먹여 살렸다. 나는 주로 소주와 맥주와 담배를 먹고살았다. 취기가 오르면 길고 짧은 푸념을 침처럼 뱉어냈다. 취기가 깰 때면 그 푸념의 조각들을 끄적거렸다. 텅 빈 머리로 어제 한 일을 떠올리고 사진을 뒤적이면서 글을 썼다. 글이라도 써서 지금의 생활을 남기고 싶었다. 나중에 아이가 자라 아비를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면 읽어보라고, 잘나지도 않고 성공은 근처도 못 가본 남자가 네 아비라고, 그런 아빠여도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기록의 힘을 알려주고 싶었다. 대화와 장난으로 전할 수 없는 내 안의 것들을 읽어보라고, 그래서 네 유전자를 물려준 늙은 사내를 기억해주면 고맙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고마움까지는 아니지, 어차피 내 노력으로 제놈을 먹여 살렸는데 '이해'정도만 해주면 된다.   





 2014년 가을에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출을 알아보러 은행에 가던 날은 비가 내렸다. 빗물에 젖은 길을 걸어가면서 마음도 젖었다. 상담을 마치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침대에 누워 아내에게 목수를 하겠다고 말했다. 3개월의 교육을 받으면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절실한 때였다. 더 이상 그림으로 먹고 살기 어려웠다. 일은 줄어들고 있었고 출판계는 해마다 단군이래 최악의 불황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전부터 막연한 예감으로 언젠가 목수일을 한 번은 할 것 같았다. 그것이 온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을 교육비로 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내가 찾아간 곳은 무허가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들이 내세운 말들은 그럴듯했지만 실상은 허울 좋은 껍데기였다. 운이 좋아 조금 유명해진 그곳을 퇴직자, 백수, 이직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대표의 욕심 없는 말과 얼굴 뒤에는 먹고살만해진 노가다의 갑질이 있었다. 거의 '사기꾼'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꾹 참고 3개월만 버티자고 했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약속한 3개월은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백수였다. 대개 공사 현장은 겨울에는 일이 없다. 땅이 얼어있기에 공사를 피한다. 추위가 풀리는 3월이 되면 전국의 노가다들이 일제히 달린다. 시즌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프로야구선수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면 기나긴 겨울 동안 몸도 만들고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훈련이라도 할 텐데 노가다들은 죽치고 겨울잠을 잔다. 3월이 왔다. 첫 현장을 나갔다. 양평에 있는 현장에 첫 출근을 하고 허름한 모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한 방을 썼다. 70년대도 아닌데 두 사람이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운다. 처음 보는 늙은 사내가 팬티 바람에 웃통을 까고 담배를 피워대고, 같이 교육을 받은 이는 이불에 누워 피운다. 처음엔 이해를 못 했지만 나중엔 오기가 발동해서 나도 피웠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니코틴 냄새로 절었다. 내가 재떨이가 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때는 똥이 마려울 때였다. 건물 안에서 일하는 도시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 배변의 괴로움이다. 망치 들고 일하다가 배가 살살 아플 때, 신호는 오는데 해결할 곳이 없다. 공중화장실도 없고 식당도 없다. 산과 산이 이어지고 이파리 없는 나무들만 빽빽이 꽂혀 있는 땅이 보이는 것의 전부다. 어디에도 좌변기는 없다. 칸막이도 없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야외에서 똥을 해결해야 한다. 변신술을 할 수 있다면 개가 되고 싶었다. 아무데서나 똥을 싸도 되는 개가 부러웠다. 똥만 싸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일을 하고 싶었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모든 것들이 부러웠다. 오장육부가 내 자존심과는 아무 상관없이 제 스스로 움직이다 보니 그런 상황이 더러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출근길에 대장을 숙소에 떼어두고 나갔다가 퇴근 후에 다시 집어넣고 싶었다. 이 직업의 비애를 똥을 누면서 맛본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익숙해졌지만 비애감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반복될수록 더 짙어졌다.







한 현장을 시작할 때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개새끼도 있었고 비열한 놈도 있었고 사기꾼도 있었고 고급인력도 있었고 양아치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사람이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한 사람이었고 서로 다른 얼굴 어딘가에 저마다의 빈 곳을 감추고 있었다. 그들의 전직은 하나같이 달랐다. 연봉 1억, 괜찮은 직장의 괜찮은 직급, 무슨무슨 대표, 고졸이거나 중퇴의 사내들. 배달과 용접과 사무실에서 일했던 사람들. 날 때부터 노가다였던 사람들은 적었다.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속에는 자기들만의 얘기들이 가득할 것이라 짐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가을에는 오래된 절의 마당에서 마지막 단풍이 떨어지는 순간을 봤다. 마음이 울컥였고 내가 모르던 장소에서 맞이한 그 순간을 마음에 담았다. 감이 익어가고 사과 향기가 짙은 과수원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겨울에도 거의 눈 구경을 하기 어려운 남쪽에도 갔었다. 그곳에서 골조공사를 하던 삼 일째에는 갑자기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강아지처럼 웃었던 적도 있었다. 제주도 협재해변에서는 혼자 국밥에 소주를 마시면서 오랫동안 바다를 봤었다. 현장을 옮길 때마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터미널과 터미널로 옮겨 다녔다. 그때마다 시간표를 찾아야 했고 노선을 확인해야 했다. 낯선 지방의 터미널에서는 의례를 치르듯 라면에 김밥을 먹었다. 라면과 김밥에는 가난의 맛이 배어 있다. 떠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맛. 3월에는 장흥으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창 밖의 봄을 보고 있었다. 추위가 풀리고 초록색 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햇빛이 배를 드러낸 대지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웜마, 저 강 좀 보소. 저 강이 사람들을 멕에 살레." 강의 물비늘은 봄빛을 안아 반짝이고 있었고 노인의 깊고 투박한 사투리는 한 곳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의 시간을 담고 있었다. 그 순간도 마음에 담았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과 겨울로 계절이 바뀌어 갔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소도시로 현장을 옮겨 다녔다. 모텔에서 모텔, 펜션에서 빈집으로 숙소를 옮겼다. 노가다들이 드나드는 싸구려 모텔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수많은 사내들이 덮고 잔 이불속에서 잠이 들고 깨어났다. 피곤한 몸과 지친 마음으로 누운 날도 많았다. 집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와 내 책상을 생각했다. 한 번 어그러진 삶의 궤적은 다시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내가 변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던 손은 매일 망치를 붙잡고 있었다. 손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오른손 엄지의 마디가 굵어졌다. 내 손도 매일 변하고 있었다. 손톱을 자주 깎게 됐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자주 손톱을 깎는 나를 봤다. 손을 쓰는 일을 하니 손톱도 변하는구나 싶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는 구름이 유난했다. 지글거리던 태양이 기운을 잃을 때쯤이면 구름들이 몰려왔다. 낮과 해 질 녘에 하늘을 보면서 감탄을 했다. 어디서 저렇게 큰 것들이 왔을까. 거대한 함선 같은 구름들이 매일 뭉치고 흩어지면서 떠 다녔다. 그것이 좋았다.


어느 날은 하늘에 구름이 겹겹이 떠 있었다. 구름의 레이어를 보면서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몽실몽실한 구름 너머에 길게 잡아 늘린 수제비 반죽 같은 구름이 떠 있었고, 보풀처럼 흩어지는 구름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떡꼬치 같은 구름이 있었다. 태양이 그 모두를 비추고 있었다. 구름 같은 날들이 흘러갔다. 꽃 피는 봄도 좋지만 초록이 낡아가는 가을의 청명함도 좋았다. 출근길에는 떨어지는 낙엽들이 도로가에 쌓이는 풍경을 봤다. 내 앞으로 떨어지는 낙엽들.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어 떨어진 이파리들이 남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게 서글펐다.


비와 바람과 햇빛을 보면서 하는 일이다.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한다. 그 하루하루마다 날씨가 다르고 햇빛이 변한다. 태양이 지구를 비추는 동안 지구는 팽이처럼 돈다. 그 팽이 위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 그게 신기하다.






이 일을 5년을 한 사람도 만났고 9년을 한 사람도 만났고 16년을 해온 사람도 만났다. 60이 넘은 고집 센 사내도 만났다. 집을 짓는 목수에 대한 애정은 왔다 갔다 한다. 제대로 집을 짓겠다는 마인드를 지닌 사람은 드물었다. 목수. 내가 생각하는 진짜 목수에 가까운 사람을 만났다. 운이 좋았다. 1년 정도를 그의 팀에서 일했다. 그는 유쾌하고 흥이 있는 사람이었다. 술에 취한 날이면 그와 죽마고우처럼 키득거렸고 일하는 날엔 그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배웠다.  






어찌 됐든 나는 아직 살아있고 내일도 가야 할 현장이 있고 할 일이 있다. 나무를 자르고 자른 나무를 날라야 한다. 140mm 벽 위에 서서 다람쥐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집 짓는 목수들이다. 못 박고 자른 나무를 조립해 집을 만든다. 일일 노동자이자 일당 노동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






밖에 비는 오는데 어디론가 가고 싶기도 한데, 마땅히 갈 곳도 오라는 이도 없다. 어쩌다 쉬는 날이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군살이 쏙 빠진 퀭한 볼, 앙상한 뼈가 보이는 가슴, 볼록 나온 배, 늘어지는 피부, 쑤시는 무릎, 거울 너머의 먼 곳을 보는 눈. 그래도 군살이 줄어든 내 몸이 제법 괜찮아 보인다. 노가다하고나서 살이 빠졌다.


만 권 정도의 스케치 북을 사고 싶다. 그 종이마다 내 상념들을, 푸념들을, 잡생각들을 기록하고 싶다. 그러면 좋겠다. 디지털이 대세이고 이미지가 실재를 지배하는 세상이어도 손에 잡히는 원초적 감각으로 하는 일들은 남아 있다. 그림이 그렇고 글이 그렇고 목수가 그렇다.


어쩌다 보니 목수가 되었다. 일생의 꿈은 그림으로 밥을 지어먹는 사람이었는데 그리 되지 못했다. 내일 또 일하러 간다. 양평에 있는 현장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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