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는 틀렸다. 비는 내리지 않는다. 눈을 뜨니 새벽 세 시 반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니 네 시 반. 멀리 바다 위로 태양의 붉은 빛이 번진다. 가늘게 실눈을 뜬 태양은 제 빛이 닿는 자리마다 선명한 색을 퍼뜨린다. 아침이다.
우울도 아니고 실망도 아닌 아침이 매일매일 돌아온다. 들국화의 노래를 들었다. 지나간 시절의 인디 밴드들의 히트 곡을 들었다. 방송에 나오는 노래는 아니다. 오래 걸어 다닌 사람들의 냄새가 있다고 고향에 붙박혀 일생을 보낸 이가 말한다. 누구를 부러워 하지도 누구를 그리워하지도 않는 사람의 냄새는 다르다고 한다. 시시한 인연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다. 진심을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진심을 다해 인연을 이어가라는 말을 죽은 스님이 말했다고 한다. 오늘도 역병은 창궐하고 나라는 제 멋대로 돌아간다고 한다. 늘 있었던 일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어제도 가난했고 오늘도 가난하고 내일도 비전이 없는 늙은 사내는 망치나 들고 못이나 박고 산다. 밥은 먹고 다닌다. 밥만 먹고 다닌다. 매일 같은 된장찌개에 비빔밥이라 맛있지도 맛 없지도 않다. 밥은 늘 같다. 같다는 것은 얼마나 안심인가. 아침 햇살 사이로 빨래가 익어간다. 어제의 노동이 오늘의 노동과 교대를 한다. 일은 늘 같다. 같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잠을 잔다. 아침에도 자고 점심에도 자고 저녁에도 잔다. 허구한 날 잠을 자던 사내는 일어나 일을 한다. 야구공이 하늘 높이 날아가고 사람들이 소리친다. 골키퍼는 알을 깠다. 알을 까고 나온 사내는 서류봉투 속에 자신의 꿈을 담아 택배로 부쳤다. 편의점 알바 여대생은 담배를 피우고 바닥에 침을 뱉고 발로 밟아 자신의 얼굴을 지웠다. 비가 온다는 예보만 들으면 비 단도리를 한다. 나무가 물에 젖지 않게 하려고 온갖 방법으로 집을 감싼다. 마치 종교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처럼. 아홉 시다. 비가 오지 않는다. 놀아야 한다. 지폐가 얼마 남지 않았다. 카드는 없다. 집은 멀다. 딱딱한 태양이 구름 뒤에 있다. 사방은 밝고 새들은 운다. 통곡을 한다. 새들은 어디서 죽는가. 페루는 아니다. 냄새를 맡은 개미들이 줄을 지어 간다. 가는지 오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다. 가고 오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흰 쌀 밥에 아침이 얹어진다. 하루가 왔다. 문 앞에 도착한 아침이 하루를 알린다. 어제랑 별 다를 바 없는 하루다. 사내는 전화를 한다. 베란다 모기장을 뜯으며 웃는다. 남자는 지나간 청춘의 시절을 후회한다. 이래도 저래도 삶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취한 아저씨는 고개를 떨구며 노래를 한다. 탁하고 꽉 막힌 목소리로 침을 늘어뜨린다. 노래는 길게 늘어진다. 후회와 반성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