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세 잔

by 오동

K가 쭈그리고 앉아 바다를 보고 있다. 이 사람이 팀의 전체 분위기를 띄운다. 모두들 그의 말과 행동에 반응한다. 나도 그렇다. 같이 노가다 하면서 서로서로 힘들다. 몸을 써야 하기에 힘들다. 어떤 날은 온몸의 힘을 쥐어짜듯이 일한다. 그런 날에는 숯가마에 있는 것처럼 땀구멍이 열린다. 땀이 물처럼 흐른다. 등에는 하얀 소금 자국이 앉는다. 무거운 자재를 나르고 나면 백 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이 가쁠 때도 있다. 천정을 바라보고 고개를 젖히고 있으면 모가지가 똑 부러질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강도가 센 순간보다는 고만고만한 강도의 노동이 매일매일 이어진다. 이것이 쌓이면 몸도 정신도 지친다. 그런 순간마다 K는 추임새를 넣듯이 소리를 지른다. "오라이!" "파이팅!" "그라제!" 일종의 노동을 위한 기합이랄까. 흑인들이 노예로 살던 시절 서로 서로 말을 못하게 통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입이 막힌 사람들은 하늘을 보고 의미 없는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의미는 없지만 가슴에 뭉친 응어리를 내뱉는 소리였다고 한다. 대를 이어 쌓여온 응어리의 정서가 재즈의 밑바닥에 깔려있다고 들었다. 속에 있는 어떤 것들을 칼칼한 사투리로 뱉어내는 것 같다. 기질이 유쾌한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오래 이 일을 했으니 별 꼴을 다 봤을 것이다. 단련된 그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집을 만드는 기술보다는 일을 진행하고 자신을 지키려는 그의 태도가 좋아 보였다.


K는 이 현장을 끝으로 팀장으로 독립한다. 이제 새로운 팀원들을 모아 자신이 이끌고 가야 한다. 쉬워 보이기도 하고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이일은 마치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네다섯이 모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누구는 치수를 재고 누구는 재단을 하고 누구는 못을 박는다. 그렇게 각자의 역할을 해야 돌아간다. 팀장은 그런 역할을 지휘하고 통제한다. 나 같은 신참은 주로 다른 사람을 보조하거나 잔심부름을 하거나 쓰레기를 줍거나 커피를 탄다. 말은 안 한다.


하루에 커피 세잔 마시면 일이 끝난다. 아침 먹고 8시 못 돼서 현장에 도착한다. 그날의 일을 준비하고 나서 한 잔, 오전에 두 시간 일하고 10시에 한 잔, 점심 먹고 쉬다가 오후 1시부터 다시 시작. 3시에 또 한 잔, 오후 5시면 일을 마친다. 오후 3시에 마시는 커피가 제일 달다. 남은 두 시간만 일하면 오늘을 마감하고 쉰다. 그러면 짧지만 내 시간이 생긴다. 그 시간에 사진도 정리하고 글도 쓰고 담배도 피우고 내 처지를 돌아보기도 하고 집 생각도 한다.


떠돌아 다니는 생활이다. 가족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못난 아비가 없는 시간에도 아이는 자란다. 이따금씩 만날 때마다 그새 큰 모습이 보인다. 현장으로 떠나기 전 날 밤에는 새끼가 나를 꼭 안고 한참을 내 품에 있는다. 얼굴을 배에 비빈다. 웃으면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한다. 어느새 헤어져야 하는 마음을 감출 줄 알게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