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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Dec 10. 2015


길은 젖었다. 어제 내린 비로 낙엽이 길바닥에 들러붙어 있다. 

지나간 날들의 메모를 봤다. 긴 생각으로 이어지지 못한 짧은 메모들.


2015. 11.13.

"미친 듯이 잔소리를 들어야 해. 그래야 일당 만원이 오르는 거여. 큰 고생했네. 성장하려면 잔소리를 들어야 해. 앞 공정의 실수는 이후 공정에서 다 드러나게 돼 있어야. 하여가네 귀에 딱지가 앉게 잔소리를 들어야 해."


"코드는 상식으로 알고 있어야 해. 은제까지 코드 따지고 있을래. 코드가 그냥 몸에 배어 있어서 그 사람이 지나가면 코드가 질질질질 흘러야제. 코드를 초월해서, 아름다운 선 같은, 그런 미적인 게 나와야 해. 그러지 않아요 부팀장 님? 은제까지 코드 따지고 있을 거여."


팀장의 말이다. 들으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2015. 11.14

은행이 노랗다. 은행 잎이 익어간다. 익는다는 것은 늙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죽음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익고, 늙고, 죽는다. 


"아이고, 아저씨. 집 짓는 소리 좋네요." 망치 소리가 텅텅 울린다.







오전 내내 아시바에 올라 천장을 보고 일했다. 평소에는 집에 천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냥 형광등 달아두는 벽 정도로 알고 있다. 이 일하면서 천장 볼 일이 자주 있다. 다른 곳보다 일하기가 어렵다. 두배는 힘이 든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내 몰골을 보니 완연한 노가다다.  온몸에 핸디코트가 묻어있다. 


팀장의 갈등이 깊어가는 느낌이다. 말이 확연히 줄었다. 공사 기간을 맞추려는 걱정과, 사람들의 일하는 태도를 고민하는 듯하다. 손발이 안 맞는다. 팀장이 빠지면 일의 속도도 줄어들고 디테일도 떨어진다. 그제는 주방 벽을 손보고 있었다. 팀장이 수도 배관을 만지다가 벽 단열재를 조금 뜯어냈다.


 "뭐여, 이거? 11 아녀?"


R값이라고 표기한다. 단열의 성능을 R로 나타낸다. 그에 따라 R값을 매긴다. R11은 '투 바이 포'로 불리는 구조재에 쓰인다. 낮은 숫자이기에 단열 값이 높지 않다. 주로 내벽에 쓰인다. 이 집은 '투 바이 식스'를 기본으로 했다. 나무가 더 넓으니 R21을 넣었어야 하는데 누군가 R11을 넣었다. 귀찮은 그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러면  안 된다. "바라시." 뜯고 다시 하라는 이 바닥의 말이다. 


안 보는 사이에 눈가림으로 넘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신경이 거슬린다. 누가 그랬는지도 안다. 탓하지 못한다. 관계의 복잡함이 고작 네 명인 우리들 사이에도 있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팀장이다. 그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웃음과 농담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벽에 퍼티를 바르고 있다. 손목이 아프다. 손목을 꺾고 스냅을 주는 동작이 많다. 내 일하다가 옆 사람들이 일한 벽을 봤다. 석고와 석고의 이음매를 보강해 주는  종이테이프가 볼록하다. 공기가 들어간 것이다. 저대로 두면 결국 다시 해야 한다.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일을 자꾸 반복한다. 서로 힘들다. 


한 팀이 네 명이다. 다섯이 좋은데 다섯이 하기에는 집이 작다. 네 명이 일하면서 서로를 본다. 골조가 올라가는 동안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는 것이다. 시간이 쌓이면서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서로의 단점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평가와 자기 생각들이 얹어지고 감정이 실린다. 낯선 사내들이 24시간을 붙어 있다. 잠도 같이 잔다. 퇴근이 없는 생활. 단점이 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러나 '태도'는 다른 문제다. 일하면서, 비록 노가다를 하고 있지만 대충하는 것을 싫어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 드러나지 않는 곳이라고 엉성하게 해놓고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면 진짜 노가다가 되는 것이다. '태도'는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어떻게 살아가는 일을 마주할 것인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결국 어떤 자세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따라 사람의 태도가 드러난다.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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