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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Dec 10. 2015

길의 메모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산 너머의 먼 하늘을 봤다. 짙은 구름. 비가 올 것 같았다. 

벽에 미장을 하다가 허리 펴고 담배를 물었다. 비가 내렸다. 비는 굴뚝에서 빠져나오는 연기의 머리를 눌러 땅으로 내려 보냈다. 바람이 낮은 곳으로 분다. 모든 무게가 있는 것들은 밑으로 가라앉는다. 안개와 연기가 한 곳에서 섞인다. 


내 정신은 토막이 났다.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썼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글이다. 내 생활을 기록하는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음을 감춘 글을 매일 썼다. 그것이 버릇이 됐는지 정작 내 일기를 쓰려니 뭔가 닫힌 기분이다. 어제 새벽에 청도를 출발해 집으로 돌아왔다. 손은 핸들을 잡고 눈은 앞을 바라봤다.  머릿속으로 짧은 문장들이 떠올랐다가 뒤로 밀려났다. 가끔씩 차를 세우고 메모를 했다. 이 순간이 지나면 지워질 문장들을 놓치기 싫었다. 


메모.

- 청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사고 없이 현장을 마친 팀장과 팀원들이 소주잔을 들어 부딪쳤다. 돼지고기를 먹고 소주를 마셨다. 청어 식당 이모의 흰 쌀밥과 백김치도 먹었다. 밤 운전이 힘들어 새벽에 일어나 가자고 했다. 나와 Y는 떠나고 팀장과 A가 남아 정리를 한다. 많이 미안하다.


- 팔조령을 넘었다. 안개가 귀신처럼 다가왔다. 주차장에서 본  새벽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다른 날보다 많다.  도로에는 차가 없다. 시골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길을 달렸다. 


- 안개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헛것이 잔뜩 낀 도로에 붉은 신호등이  점멸했다. 시청, 경대교, 팔달 같은 표지판이 보였다. 지하차도와 고가도로를 반복해서 지났다. 네비에서 알려주는 '지하차도'의 발음이 거슬렸다. 날카롭고 높다. 북대구 IC로 진입했다. 대구는 큰 도시다. 이번 현장이 끝났다. 


- 청도에서 42일의 밤과 낮을 보냈다. 


- 집을 지었다.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집 짓기의 시작과 끝이었다. 거친 일과 섬세한 일을  번갈아했다. 그때마다 몸과 정신이 모드 전환을 해야 했다. 시멘트를 개는 일과 줄자로 밀리미터를 재는 일이 달랐다. 창틀의 옆구리에 페인트 칠을 할 때는 붓이 지나가는 자국을 뚫어져라 봤다. 건축주의 자녀들이 왔다. 아이들 목소리도 들렸다. 집에 두고 온 내 새끼 생각이 잠깐 일어났다. 


- 주유계의 바늘이 한 칸 남았다. 칠곡 휴게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41,000원. 유리병에 든 커피를 사고 담배를 피웠다. 


- 잠깐 눈을 붙였다 뜨니 삼십 분이 지났다. 해 뜨기는 이른 시간이다. 도로의 모든 가로등과 차들의 전조등을 합친 빛 보다 더 밝은 태양이 서서히 깨어났다. 


- 골조를 올리던 순간과 지붕을 만들던 날이 기억난다. 나는 아직 느리고 서툴다. Y의 느린 손을 보다가 그의 태도를 눈치챘다. 일이 끝날 무렵이 되자 그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계단을 만드는 게 서툴다. 자주 헤매고 실수를 한다. 팀장은 도와주지 않는다. 일부러 모르는  척한다고 느꼈다. Y는 나이가 많다. 그는 그의 몫을 해야 한다. 이 노가다 바닥에도 살아남기 위한 경쟁과 노력이 있다. 


동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멀리 북한산이 보였다. 산세가 거칠다. 돌덩어리 봉우리가 뾰족하다. 집이 있는 동네에 들어섰다.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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