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by 오동

비가 내렸다. 장마가 온다는 소식은 며칠 전부터 들었다. 예보처럼 이제 장마에 들어섰다. 어제 제주로 돌아 왔다. 공항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오는 중에 비 냄새를 맡았다. 6일 만에 돌아 온 현장이 약간 낯설었다. 내가 없는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살폈다. 나 없이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항상 내가 중심이 되어 세상을 본다. 그럴 수밖에 없잖은가. 살아도 내가 살고 죽어도 내가 죽는 것이니까. 그러나 내가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안다. 뼈저리게 안다. 내가 없어도 현장은 잘 굴러가고 있다. 간발의 차이로 어제의 '까대기'를 피했다. 석고 이백여장을 날라야 하는 일이다. 이 팀에서 내가 힘이 제일 약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처지는 정도는 아니지만 돌아오자마자 '까대기'를 했다면 근육이 놀랬을 것이다.


공구는 거진 다 현장에 두고 다닌다. 이제 문도 달았고 창문도 달았다. 외부에 노출될 일이 없다. 외벽 마감재도 차곡차곡 올라가고 있다. 이삼 일이면 끝낼 수 있는 정도만 남았다. 이 층만 한 높이의 다락방 천장부터 석고 보드를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4x8 사이즈의 석고 보드를 둘이서 들고 천장에 갖다 댄다. 두 사람이 석고 보드를 머리에 이고 버티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이 '매거진'으로 나사못을 박는다. 손 드라이버로 나사못을 돌리는 것보다는 드릴로 돌리는 것이 빠르고 쉽지만 '매거진'은 드릴보다도 훨씬 빠르다. 석고 보드에 나사못을 박기 위해 만든 공구다. 편하다. 석고 보드에 갖다 대고 조금 힘을 주어 밀면 윙 소리를 내며 박힌다. 천장에 석고 보드를 붙이려면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머리에 커다란 석고 보드를 이고 천장에 고정시킬 때까지 버텨야 한다. 석고와 석고의 간격과 줄도 맞춰야 한다. 이게 몇 초만 길어져도 힘들다. 노쇠한 근육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럴 때 매거진은 고맙다. 나 같은 중늙은이도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니 말이다.


내 손으로 하는 대부분의 일은 공구들이 대신한다. 공구가 없으면 일이 안된다. 할 수는 있겠지만 속도가 나오겠나. "형님, 처음 시작할 때는 속도보다는 정밀함에 더 신경 쓰세요. 그게 몸에 익으면 나중에는 속도도 나오면서 정밀해져요." 나보다 몇 개월 먼저 시작한 사람이 내게 조언을 했다. 맞는 말이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꼼꼼한 성향이다. 이런 일에 재주가 조금 있다. 쉽게 익히고 쉽게 배운다. 집이라는 사물이 덩치가 크기에 다루기 힘들어서 그렇지 일에 필요한 테크닉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단지 경험과 집에 대한 이해가 쌓여야 한다. 자잘한 요령들도 필요하겠지. 그러나 크게 보면 자르고 맞추는 일의 반복이다. 단순하다. 사용되는 공구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기술보다는 이해력과 꼼꼼한 정성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일을 하면서 비를 보고 비를 맞으며 일을 했다. 잘도 내린다. 시원한 비. 내가 없는 사이에 천창을 달았다. 천장에 달린 유리 너머로 하늘이 보인다. 나무도 보인다. 구름은 안 보인다. 물방울이 떨어진다. 비가 샌다. 팀장은 어디서 물이 떨어지는지 몰라 오전 내내 고생을 했다. 비를 맞으며 지붕에 올라가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물방을은 여전히 똑똑 떨어지고 팀장은 지붕에서 흠뻑 젖었다. 나는 오전 내내 석고를 붙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 맥주 한 잔을 했다. 비를 피해 술집 건물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담배 연기를 빗속으로 뱉었다. 어깨에 뭔가 툭 떨어졌다. 손으로 털었다. 빗방울과는 다른 촉감이 만져졌다. 위를 봤다. 제비 집이다. 제비가 날아들고 날아간다. 새끼들 짹짹대는 소리도 들린다. 제비 똥이 어깨에 떨어진 것이다. 제주도여서 술 먹다 제비 똥도 맞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