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왔다.
남은 건 가난뿐인 처가와 기울어가는 친가를 다녀왔다. 이제 나이가 많다. 두 집의 부모님은 완연한 노인의 모습이다. 길은 막혔다. 중부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자 길게 늘어선 차들은 시속 5km의 속도로 전진했다. 걸어가는 게 더 빠를 듯한 길도 있었다. 오줌이 마려웠으나 졸음 쉼터의 화장실은 줄을 선 사람들로 꽉 찼다. 담배 한 대 피우고 그냥 갔다. 다음 휴게소까지 30여 km를 기어갔다. 나는 졸았다. 운전은 아내가 했다. 차 트렁크에 가득한 짐과 뒷자리를 꽉 채운 처제와 내 새끼, 앵무새가 내 짐이었다. 어쨌거나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이고 앞으로 그런 날이 많이 남았다.
조카들은 이제 스무 살이 되었다. 청춘의 문턱을 넘었다. 신기하고 황당하고 놀라운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용돈 5만 원씩 조카 둘에게 주었다. 나로선 최선의 금액이다. 미안했다.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외삼촌이고 싶었지만.
친가의 아파트는 거의 쓰레기통이었다. 정리되지 못한 물건들이 40평 대 아파트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사람이 눕고 앉을 공간이 있다. 그 주변으로 온갖 잡동사니들이 늘어서 있다. 이 집에 들어온 이후 밖으로 버려진 물건이 거의 없다. 앞 뒤 베란다에는 사람이 걸어갈 공간이 없다. 화장실의 배수구는 이물질로 막혀서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느리게 느리게 늙은 눈물을 흘리듯이 빠지는 물을 보다가 짜증이 났다. 샤워기는 제 얼굴을 뜯어낸 채 사방으로 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마저도 물이 시원치 않다. 모두 낡았다. 늙은 부모님 만큼 낡고 지친 집이 안쓰러웠다. 다시 짜증이 났다. 왜 이러고 사나. 죄다 들어내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부글거렸다. 우선 나부터 던지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면 여기저기 숨겨둔 물건을 꺼내 다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유전자를 공유했기에, 어려서 보고 배운 습관이 있기에 나도 정리를 하지 못한다. 늘어놓고 산다. 돌아가면 모두 버릴 것이다.
처가에 혼자 사는 장인의 집 역시 낡았다. 칠십 평생을 살면서 남은 건 가난뿐이다. 환기를 안 해 퀴퀴한 냄새가 집에 배였다. 노인의 담배 냄새, 늙은 남자의 체취, 외로움과 고달픔이 섞인 밥 냄새가 공기 중에 있었다. 짜증이 났기에 말을 하지 않았다. 가난은 괜찮다. 돈 벌고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냄새가 싫고 정돈되지 않은 삶이 싫은 것이다. 그렇게 방치한 듯한 생활이 짜증이 나는 것이다. 늙고 가난하고 힘들어도 단정한 삶은 가능하다.
자기의 아비를 애처로워하는 아내와, 자신의 아비를 원망하는 아내가 부엌에서 음식을 차렸다. 딸로 돌아온 중년의 아내의 뒷모습이 예뻤다. 일찍 돌아가신 장모를 위해 차례를 지냈다. 장인은 차례와 제사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 허영이 싫었다. 또다시 일어나는 짜증. 좀 더 단순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례, 제사, 명절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명절이 의미가 있다면 집 떠난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라는 것뿐이다. 명복을 빌 대단한 조상도 체면도 없다. 한 세상 버티기도 힘든 사람들이다. 같이 모여서 간단히 밥 먹고 웃고 수다 떨다가 다시 흩어지면 그것으로 된다. 서로 편하게 모이고 편하게 먹고 웃으면 내 가족같이 보일 것 같다. 짐을 싸들고 버리지 못하는 내 부모나 술과 푸념으로 외로움을 드러내는 아내의 아비나 모두 싫었다. 그렇게 늙고 싶지 않았다. 나도 늙어가고 있다. 머지않아 내 부모의 노년이 내 현실이 될 것이다. 단순하게 늙자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들었다. 간단하고 단순한 공간과 최소한의 것들로 이루어진 생활을 생각했다. 그림과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침대, 이불, 옷, 냉장고, 세탁기. 그래도 많다. 최소로 줄인 삶을 꾸리려면 뭐부터 버려야 할까.
돌아오는 길은 다행히 막히지 않았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초입에는 조금 막히더니 곧 시원하게 달렸다. 생각보다 빨리 서울에 들어왔다. 처제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야 내 집에 온 것 같다. 나를 위해 와인 두 병을 샀다. 명절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