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하는 시간과 같은 리듬으로 생활하고 싶었다. 스마트 폰의 알람을 켰다.
나를 다잡으려는 것과 노동하면서 몸에 익힌 규칙적 리듬을 작업하는 동안에도 적용해 보고 싶었다.
아침 8시에 맞춰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사토리얼리스트'의 블로그를 열고 사진 두 장을 베껴 그렸다. 손을 풀자는 것도 있고 그림 그리는 모드로 전환하려면 완충의 감각이 필요한 것도 있다. 집 짓는 일과 그림 그리는 일은 극과 극이다. 하나는 온몸으로 일하고 다른 하나는 온 감각으로 일한다. 감각의 날을 잘 벼리려면 튼튼한 체력이 필요하다. 하루 8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집중할 수 있는 몸이 돼야 한다. 노가다한다고 체력이 늘진 않는다. 오히려 전보다 약해졌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그림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림이라기보다는 집에 두고 온 책상과 내 자리를 그리워한다는 게 맞을 것이다. 후회와 반성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끈질기게 붙들고 있던 생각들이 있다. 그것을 화두라고 하나보다. 화두(話頭)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괴롭히던 그 생각이 화두였구나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이 얼마 전에 있었다. 나는 '마개'라고 했다. 막연히 나를 꽉 막고 있던 어떤 것을 빼내면,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 같은 그것을 뽑아내면 시원할 것 같았다. 뭐라도 될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 그림이든 글이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함. 그리고 싱겁게 마개를 땄다.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어색한 사이였기에 서로 말이 없었다. 몸은 피곤했다. 불편한 침묵을 덮기 위해 운전하는 이가 노래를 틀었다. 댄스 음악 몇 곡이 이어졌고 김건모의 노래가 나왔다. 김건모의 노래를 듣다가 이해했다. '나'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어떤 동네에 어울리는지'를 알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하다가 마개가 뽑혔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원함과 싱거움이 같이 있었다. 후련한 느낌, 그 뒤의 고작 이거였나 싶은 허탈함이 들었다. 마개만 뽑히면 뭔가 대단한 것이 올 것 같았던 기대는 사라졌다. 그냥 이런 걸 하면 되는구나. 손에 꼭 쥔 것이 근사한 요리의 레시피인 줄 알았는데 막상 펴보니 비빔밥이나 계란 프라이 정도였구나. 그것도 감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바라지 않게 됐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메모를 하고 안도의 숨을 쉬고 집에 돌아가면 짬을 내서 작업을 하자고 생각했다.
축구 선수를 그리면서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떠올렸다. 짧게 메모한 글이 있지만 아직 제대로 만지지 못했다. 어쩌면 잘 못할 것 같아서 처박아 둔 것인지도 모른다. 감은 오는데 막상 자세 잡고 뭔가 만들려고 하면 별 볼 일 없는 것이 나올까 봐 미적거리는 심리일 것이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숱하다.
두 시간 간격으로 알람이 울렸다. 처음 세 시간은 노트북으로 만화를 봤다. 청소를 하려던 생각은 다섯 시 이후로 미뤘다. 머리를 자르려던 계획도 다섯 시 이후로 미뤘다. 근무시간은 아침 8시~오후 5시. 노가다의 리듬에 맞췄다. 익숙해지면 더 늘릴 수도 있다. 사실 새벽 시간과 한 밤중이 편할 때가 있다. 짧게 집중하고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쓰는 생활. 어떤 형태든 리듬이 생기겠지.
그림은 어색했다. 축구선수를 그리는 것과 일상복 차림의 사람을 그리는 것이 다르다. 감이 오지 않는다. 몇 장 더 그리고 며칠 더 하면 잡힐 것이다. 시간은 없고 하고 싶은 것들은 두서없이 떠오르고 가라앉는다.
그림으로 돈을 벌고 생활을 이어가고 싶은 바람이 여전히 있다. 그것을 위해 어디에 집중하고 어느 구멍에서 돈을 마련할지 아직 모른다. 이전에 하던 일들은 멀어졌다. 주문을 받고 그들의 입맛에 맞추는 그림들에 질렸다. 더구나 늙은 퇴물에 속하는 나이이다. 새로운 재능들은 널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짧고 담담한 얘기들. 그것은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돈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방법을 생각하고 머리를 굴리지만 막막한 일이다. 페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홍보를 위한 수단들. 이곳도 그런 것 중의 하나지.
방법은 모르겠지만 방향은 알겠다.
일단 가보자. 뭐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