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남은 술을 유리컵에 따르고 노래를 들었다.
중얼거리는 단어와 단어를 들으면서 노래와 시와 취기가 적당히 섞였다. 말은 가사가 되고 소리의 높낮이는 노래가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게도 저런 재주가 있으면 더 많은 말들을 늘어놓았을지도 모른다. 새벽이나 낮이나 저녁이나 때를 가리지 않고 불쑥 드는 생각들이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버틸까 하는 것이다. 당장은 돈이 급해서 목수를 하고 있지만 더 나이가 들면 공장에도, 편의점에도, 카운터에도 필요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늙은이가 되면 나는, 무얼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하는 잡생각들이다. 그럭저럭 유지되는 카페를 하거나 술집을 차리면 좋겠다는 공상을 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주정을 했던 것 같다. 어제.
그러려면 가게를 얻을 돈이 있어야 하고, 가게를 꾸밀 돈이 있어야 하고, 장사에 필요한 도구를 마련할 돈이 있어야 하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배울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것이 없다. 잔고는 비었고 빚은 늘었다.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내 한 몸 구겨 넣을 공간이 있고 내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를 기록할 종이가 있다면 좋겠다. 그것으로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한다면 더 좋겠다는 쉰내 나는 바람.
2월이고 음력으로 새해를 맞은 지 얼만 전이지만 내년에는 쉰이다. 오십. 내가 거북이처럼 오래 살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코끼리의 일생이 몇 년인지, 닭은 한 칠팔십 년 산다던데. 어째서 내 욕망은 부패하지 않는가. 매일 일어서고 가라앉는, 앉았다 조금 일어서는 쪼그려 뛰기 같은 내 욕망은 어째서, 제자리만 뛰나. 그래도 쉰이다.
내년이면 내가 이 땅에서 살아온 시간이 오십 년이 된다. 정확히는 47년과 몇 달이겠지만 대충 쉰이라고 하자. 그러면 난 뭘 하고 오십 년을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 후회와 반성과 미련과 답답함이 버무려진 시간을 세어보다가 마이너스가 되는 잔고와 비슷한 기억들에 짜증이 나겠지. 나는 내 패턴을 안다.
반복과 반복으로 되풀이되는 미련한 나를 거울로 보다가 또다시 짜증이 나겠지. 짜증은 어쩌면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쉰이 되기 전에 쉬어버린 나를 기억하는 동창들은 모두 어떻게 늙었을까. 누가 제일 먼저 죽고 누가 가장 나중에 죽을까. 나는 얼마나 더 살아갈까. 아내와 새끼는 나보다 더 오래 살아갈까, 혹은 나보다 늦게 죽을까. 같은 쓸모없는 우울들이 숙취처럼 일어난다. 술은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호기심을 채우고 생계를 위해 목수 일을 경험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르지 않은 일을 직업이랍시고 한다. 미련하다. 어제는 비가 내렸다. 그제도 비가 내렸다. 비는 안개와 섞여서 눈 앞의 아파트를 모두 가렸다. 조금만 보여주고 대부분 지워버렸다. 사라진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그 안의 생활들이 아름다웠다. 안개는 지워버리는 미학을 안다. 안개가 부러웠다. 안개 속에 가려진 싸움과 짜증과 두려움과 답답함이 좋아 보였다.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케잌을 사고 수입 맥주 여덟 개를 샀다. 소주를 두 병 샀다. 이미 돼지 갈비를 저녁으로 먹은 상태였다. 2차를 위해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마시고 떠들고 웃었다. 취한 헛소리들에 서로 즐거웠다. 일어나니 모두 사라졌다. 집은 조용하고 앵무새는 가끔 잠꼬대를 했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소리에 잠이 깼다. 더 평범하고 더 쉬운 말로 내 안의 말을 적고 싶었다. 쉬운 문장과 쉬운 단어를 어떻게 배열해야 내가 보일까. 그런 생각도 하고.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다행이다.
미안하다, 이런 말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