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동 Feb 23. 2016

비가 오셨다

청도 4일 차


 기초 기단부가 튀어나온 곳이 있다. 작업  첫날(10. 24일) 수정 작업을 현장 기초 팀에게 요청했다.  오늘까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어제의 비 예보가 맞았다. 아침에 비가 내렸다. 두어 시간 내리고 그치는 비라 오전에는 쉬었다. 현장 근처에 오래된 절이 있다고 한다. 그곳 약수물이 위장에 좋다고 들었다. 쉬는 김에 밥 먹고 물 뜨러 가자고 나섰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을 보다가 저게 '물 끊기'구나 싶었다. 암막새를 타고  내려오는 빗물이 둥글게 흘러내리다가 뾰족하게 떨어진다. 아름다운 곡선의 물 끊기.





2미터가 넘게 벽체 바깥으로 뻗어나온 서까래. 길다. 저 길이를 감당하려면 상당한 무게가 지붕에서 누르고 있을 것이다. 대청마루에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한옥 목수 3개월 경험자 김 팀장의 <전통 한옥의 공학과 미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공포와 기둥과 서까래와 뭐 그런 것들. 





아득한 시절에 개업한 절이라고 한다. 신라. 의상대사와 삼국유사가 이 절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시간이 쌓인 게 눈에 보인다. 말 안 하고, 티 내지 않고, 드러내지 않아도  보이는 게 있다. 느껴지는 것이 있다.

사람, 마음, 시간 같은 것들. 





언제 적에 세운 기둥인가. 아득한 시간 앞에서 인간의 백 년을 떠올렸다. 





물 뜨러 갔다가 또 다른 집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봤다. 지방 문화재다. 양반 댁 한옥을 상상하고 찾아갔다가 초가집을 마주했다. 1780년대 어느 때에 지은 집이다. 보와 기둥이 건강해 보인다.  





마루의 나무가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뻘이다. 마루 밑의 공간이 요즘 말로 하자면 크롤 스페이스다. 크롤 스페이스에는 환기가 중요하다고 들었다. 그 기능이 대략 삼백 년을 멀쩡히 버티게 한다는 것을 눈으로 봤다. 





한옥에서는 서까래를 가로지르는 저 나무를 뭐라고 하나? 한옥 목수 3개월 경험자 김 팀장에게 물었다. 

"보."


글쿤. 

해 나왔다. 





일하자. 즐거운 얼굴로 내부의 벽체를 만들었다. 

오후 일만 하니 마음이 조금 바쁘다. 가능한 오늘 내벽까지 완성하려고 했으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거실과 작은 방을 가르는 긴 내벽을 짜고 있다. 





한쪽 면의 벽은 마감했다. 





합판 덮고 외장재 붙이면 다시는 못 볼 뷰.

현관 벽체를 올리고 공구를 정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형님, 정리하세요."





내일은 진짜로 내벽 마감하고 벽체 수직 잡고 천정 장선 작업에 들어간다. 









작가의 이전글 쉰이 되기 전에 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