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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Feb 29. 2016

마지막 눈

눈이 내렸으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걷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베란다 창 밖으로 담배연기를 뱉어내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시큰둥한 마음과 흩날리는 마음이 같이 있었다.


다음 현장이 잡혔다. 멀리 간다. 가야 할 곳이 정해지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다시 내 책상을 떠나, 내 방을 떠나, 아내와 아이를 두고 가야 한다. 





집에 돌아오면 그림을 그리겠다던 다짐은 지키지 못했다. 두어 장 그리다가 멈췄다.

그림도 글도 마음에 붙지 않은 날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무기력했다는 말이다. 


그 사이에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뭘 해서  먹고살까?"였다.

가진 재주는 희박하고 경험도 일천하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담배를 피웠다. 아파트 현관문을 지나오면서 여태 살아온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용케 살아왔다. 온전한 내 힘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고 어려운 때에 기회를 준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떠났다. 내가 떠나온 것이다. 그들을 떠나오면서 그림으로  먹고살겠다는 다짐과 벽돌처럼 단단히 살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바스라졌다. 


가끔 어쩌다 이지경이 됐나 싶은 생각이 든다. 후회도 든다. 소용없는 짓이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내가 보는 방향이 어느 곳에 닿을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만은 안다. 확신도 없고 희망도 없이 간다. 





눈에 덮여 보이진 않아도 눈 밑에는 연못이 있다. 물은 얼었다. 아이들이 던져둔 나무토막들이 얼어있다. 발자국.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눈과 비의 차이일 것이다. 어제는 늦게까지 손님들과 같이 있었다. 마음을 확 열지 못하는 대화를 길게 나눴다. 대화는 툭툭 끊겼고 그 사이마다 서로의 피곤을 느꼈다. 삼 년 정도 알고 지내는 가족이 이사를 간다. 그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돈을 벌고 생활을 유지하고 아이를 기르는 시간들. 그 밥벌이에서 조금 유리한 위치를 갖은 사람과 위태로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내 자리는 항상 불안하다.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익숙하다, 이런 기분은. 


술병을 치우고 접시를 씻었다. 남은 맥주를 홀짝이면서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많은 이야기들과 사진들, 그림들이 명멸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재주를 파는 사람들, 노동을 팔고 밥을 먹는 사람들, 지식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웹에 떠도는 사람들. 잘 모르겠다. 이런 시대에 내가 살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감자탕, 순댓국, 선지 해장국, 김밥에 라면, 소주, 맥주, 냉면과 국수, 오뎅, 떡볶이 같은 것들이 나를 닮은 것 같다.  


시를 쓸 줄 안다면 좋겠다. 

뭔가 내 안의 것을  중얼거리고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바닥에 있는 것이겠지. 

이런 몸으로 산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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