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이나 잠에서 깬 후에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버릇 좀 없었으면 좋겠다. 멍하고 지겹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못한다. 페북과 블로그와 이곳을 매일 본다. 특히 페북. sns로 불리는 여러 곳을 기웃거리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어딘가 목줄에 묶인 개꼴이다. 말뚝의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개처럼 원을 그리며 걷는 것 같다.
커피를 갈았다. 모카 포트에 물을 붓고 커피 가루를 넣은 후 가스렌지 위에 올렸다. 불을 켜고 파란 불꽃을 최소로 낮춘 후 전기 포트에 물을 끓였다. 세척기에 있는 컵을 꺼내고 보온병 두 개를 꺼냈다. 6인용 모카 포트는 진한 맛의 커피 세 잔을 만들 수 있다. 모두 내가 마신다. 가끔 부실한 이를 거울로 보면 커피와 니코틴으로 인해 이 사이가 검게 착색된 때가 있다. 커피를 마시고 물로 입안을 헹궈야 하는데 며칠 놓치면 이빨의 색이 변한다. 스케일링을 받고 나면 다시 하얘지고. 치약을 짜 칫솔에 얹고 이를 닦는다. 끝나면 가글로 입안을 헹군다. 톡 쏘는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알싸한 게 시원하고 소독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뭔가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가글을 만든 이들이 노린 마케팅의 포인트일 것이다. 실제 소독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소독이 된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맛이 관건이겠지. 파란색 투명한 액체 혹은 연녹색의 투명한 액체. 청량감이 드는 색과 알싸한 맛의 조합은 위생으로 연결되겠지.
아이가 일어나 나를 본다. 커피 끓인다고 달그락거렸더니 잠을 깨웠나 보다. 책장 앞에서 만화책을 뒤적거린다. 나와 닮은 아이, 나와 닮은 사람, 나와 닮은 예민함. 내가 좋아하던 만화를 내 새끼도 좋아한다. 요철 발명왕을 보면서 한글을 배웠던 나와 요철 발명왕을 보며 낄낄대는 새끼. 그 모습을 보면서 좋았다. 내 안의 어떤 것이 유전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 재주를 이용해 잘 살아갈 것이다. 적어도 못난 아비를 닮지 않기를 바랐다.
커피는 적당히 검게 나왔다. 크레마 비스무리한 거품도 보이고. 새끼의 삶은 제 몫이니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내 앞날이나 잘 챙기자. 다시 아침이다. 며칠 춥다. 바람이 차다. 그래도 겨울이 끝나가는 게 눈에 보인다. 뼈만 남은 나뭇가지에 쌀알만 한 새순이 올라온다. 아직 작고 눈에 띄진 않아도 봄이다. 하늘 저쪽에서 봄이 오고 있다. 지구는 어김없이 돌고 있고 이제 등을 돌려 따뜻한 쪽으로 움직인다. 좀 나아지겠지.
망치 들고 못 박는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현장에서는 한 번 데고 한 번 찢어졌다. 작은 상처였지만 손과 얼굴에 흔적이 남았다. 왼손 손등에 남은 화상 자국이 없어지지 않는다. 검붉게 변한 피부가 술을 마시면 유난히 붉어진다. 왼쪽 눈가의 아문 상처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손을 대면 도톰하게 뭉친 살이 만져진다. 나와 같이 늙어갈 내 껍질. 상처는 어떤 식이든 흔적을 남긴다. 그것을 통해 나는 요령을 배웠다.
곧 집을 떠나려니 괜히 이것저것 마음이 쓰인다. 새끼와 농구를 하고 서툰 기술을 몇 개 알려줬다. 당분간 같이 농구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내가 피곤하다기에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점심을 차려주기로 했다. 점심은 김밥.
우리 집에서는 '천국의 김밥'이라고 한다. 구운 김에 밥을 얇게 펴고 간장과 김치 조각만으로 만든다. 최소한의 재료로 만든 김밥이다. 은근히 식욕을 땡기는 것이라 밥을 많이 먹게 된다.
일단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