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덟 시 반 차를 타야 한다. 장흥으로 간다.
집 근처에서 광주까지 가는 고속버스가 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흥까지 직행하는 차편이 있지만 강남터미널까지 가는데만 한 시간 반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아침부터 부대끼고 싶지 않았다. 광주를 경유해 장흥으로 가면 될 것 같다. 시간표도 미리 알아뒀다.
2. 자유로를 달리고 있다. 잠깐 책을 읽던 사이에 버스는 내 예상과는 다른 길로 들어섰다. 평소 다니는 길이 아니다. 다리를 건넌다. 이 길도 평소와는 다르다. 창 밖은 잿빛. 한강도 하늘도 잿빛.
3. 길이 막힌다. 표지판을 보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알고 싶었으나 내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막혔다. 소설을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창 밖이나 차 안이나 불편하다. 우등 버스가 아니라 자리가 좁다. 발 뻗기 힘들어 피가 몰리는 듯. 다리가 무겁다. 잠이라도 잤으면 좋으련만 졸리지도 않다. 아침에 마신 커피 탓인가.
4. 광주에 도착했다. 표를 끊으러 매표소로 갔다. 1:25분 차가 있었지만 2:05분 표를 끊었다. 뭐라도 먹고 싶었다. 담배 피울 곳을 찾았다. 냄새. 담배 피우는 곳 주변으로 담배의 눅진한 냄새가 난다. 재떨이에 밴 꽁초와 침과 습기가 섞인 냄새다. 라면에 김밥은 일종의 세리머니 같다. 힘든 일을 하러 먼 곳으로 가는 사람에게 주는 밥. 붉은 국물을 수저로 떠먹으면서 면발과 김밥을 우적거렸다. 라면과 김밥에는 가난과 외로움의 맛이 배어 있다.
5. 광주를 벗어나자 비가 내렸다. 집을 나서면서 남쪽은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를 봤다. 우산도 챙겼다. 차창으로 빗물이 흐르고 번지고 미끄러진다. 잠깐 졸다가 밖을 보다가 봄이 왔구나 싶었다. 축구장 잔디 같은 보리가 보였다.
6. 숙소로 사용할 집을 찾았다. 빈 집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낡은 집. 천장은 낮다. 서서 팔을 뻗어 올리면 천장에 손이 닿는다. 어릴 적 살던 집이 생각났다. 마당이 넓다. 24시간 열어두는 대문으로 들어오면 시멘트를 깐 마당이 있고 담을 따라 나무와 풀들이 자란다. 남쪽 끝에 있는 동네이고 평지다. 공기가 따뜻하다.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조금씩 더위가 느껴졌다. 의식하지 못하고 겉옷을 벗었다. 마을에는 제주도에서나 보던 야자수들이 보였다. 제주와 비슷한 기후라고 한다.
7. 팀장이 도착했다. 건축주와 만나 내일부터 할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현장을 둘러봤다. 현장 주변으로 축사가 여럿 보인다. 소울음소리도 들리고. 지하수를 먹지 못할 것 같다. 저녁을 먹었다. 여기도 별이 많은 동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