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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May 27. 2016

돈도 없고 ㅈ도 없지만

일 년인가 이 년 만에 만난 후배와 수육에 백반을 먹었다. 

홍대로 가는 전철의 풍경이 낯설다. 사람들 손에 든 스마트 폰이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폰에 코를 박고 있는 풍경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어색하다. 책도 없고 신문도 없는 전철. 

자리를 옮겨 술집에서 후배의 긴 푸념을 듣다가 나도 힘이 빠진 것 같았다. 창작으로 먹고사는 걸 해결하고 그림이나 글 중 어느 하나라도 잘 되면 좋겠다는 푸념, 10년을 넘게 이 일을 붙들고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고 나아지지 않는다는 말들. 들으면서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자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말들보다는 날카롭고 뾰족한 말들이 떠올랐다. 그 말들이 실은 나에게 던지는 말이란 것은 아침을 먹다가 깨달았다. 


맥주 두 잔을 마시고 담배를 서너 대 피웠다. 가끔 외국인도 보이고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도 보였다. 공연도 하고 커피도 팔고 술도 파는 곳이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사무실 겸 가게. 벽 위쪽에 액자에 넣은 글귀가 보였다. "돈도 없고 좆도 없지만" 가화만사성, 노력, 성실, 인내, 화목 따위의 공허한 말들보다 돈도 없고 좆도 없다는 말이 더 와 닿는다. 저잣거리의 투박하고 낮은말이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말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벽에 붙여놓은 내 그림들을 떼었다. 다 쓸데없고 부질없는 것 같아서.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돈 없다. ㅈ은 있다. 기댈 언덕도 비빌 뭣도 없다. 오로지 내 두 손과 몸뚱이만 의지해 살아간다. 망치를 들고 살아가지만 다시 붓을 들고 종이에 코 박고 사는 삶으로 돌아올 것 같다. 막연한 예감. 예감이 익는 때가 오겠지. 그러면 또 돌아오겠지. 재능이고 지랄이고 간에 마지막 10년을 매달려보고 싶다. 더 늙기 전에. 이미 충분히 늙었고 내 가능성이란 미미한 것이지만 다시 해 보고 싶은 이 욕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먹고사는 일이 그 어떤 사랑보다 강하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다. 생계는 힘이 세고 예술은, 작업은, 그림은 약하다. 그런데 자꾸 이쪽에 미련이 남는다. 다시 하자고 더 해보자고 내가 나를 흔드는 꼴이다. 후배에게도 같은 말을 해줬다. 그래도 되나? 이 일이 밥도 명예도 보장해주지 않는 그림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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