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온다. 어제는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코피를 쏟았다. 바쁘게 일했고 힘들게 일했다. 몸은 지쳤고 마음은 무거웠다.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아내가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지만 아니라고 답했다. 아내랑 얘기하던 중에 코가 뜨뜻하더니 피가 났다. 더운 기운의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휴지로 코를 닦고 세면대에서 거울을 보고 씻었다. 수돗물에 씻기는 피가 끈적하다. 물에 풀어지는 붉은 핏물. 피가 멈추질 않는다. 피를 멈추려고 휴지를 콧구멍에 끼워 넣으면 금세 붉게 물든다. 빼내면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 변기에 얼굴을 걸치고 물에 풀리는 핏물을 봤다. 코피를 쏟은 게 얼마만인가? 거의 이런 적이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코피가 날 정도로 피곤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 일이 힘들었나 싶었다.
내일을 위해 더 자야 하는데 잠이 없다. 뒤척거리다가 주저앉은 기분을 다스리려고 쓴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변기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다가, 세면대에 묻은 핏물을 씻어내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그란 핏자국을 지우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의아했다. 조금 서글펐다.
아침에는 유튜브에서 우주의 시작에 관한 TED동영상을 봤었다. 그러니까 우주의 기원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추리와 상상력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이 우주의 출발점에서 이미 내재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얘기들이 재미있는 것은 현실을 벗어나 아주 멀고 오래된 곳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자본도 시스템도 도덕도 선과 악도 없는 곳. 우주는 아득하고 아득하며 내 혈관에 흐르는 붉은 피는 끈적한 선홍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