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정거장에 설 때마다 퀴퀴한 땀냄새가 났다. 내 몸에서, 옆 사람의 옷에서 서로의 체취가 올라온다. 맡고 있기 거북하다. 운전기사는 무슨 생각인지 후덥지근하고 습기 찬 여름에, 게다가 비 오는 날에, 더구나 사람들이 꽉 찬 버스에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창을 살짝 열었다. 달리는 중이라도 끈적한 땀 냄새를 피하고 싶었다.
졸리다. 눈꺼풀이 까끌거릴 정도로 졸리다. 눈을 뜨고 차창 밖의 풍경 조각이라도 볼라치면 눈이 감긴다. 잠깐씩 잠이 들었다. 자는지 깨어있는지 모르는 헤롱대는 상태다. 비 오는 날은 쉬는 날이란 규칙은 이제 소용없다. 지붕을 덮었으니 실내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재가 없다. 진행할 공정에 필요한 자재가 약속과 달리 도착하지 않았다. 비도 오고 휴가에서 갓 돌아온 팀 사람들이 일하기 싫은 눈치다. 아침 먹고 현장에 도착해서 팀장이 건축주와 통화를 한다. 비 때문에 외장재를 붙이지 못하고 실내는 자재가 없어서 딱히 할 일이 없다. 쉰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노트북 챙기고 새로 바꾼 아이폰 6 챙겨 나왔다. 아내와 아이는 오늘 돌아간다. 지난주에 내 휴가에 맞춰 제주로 왔다. 작년에도 이맘 때쯤 제주에 왔었다. 그 기억이 좋아서 같이 휴가를 보내려고 했다. 때는 장마철이라 하루 걸러 비가 온다.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하늘이 닫힌 날이 많다.
바닷가로 왔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버스에는 젊은 여자들이 많이 보였다. 서넛이 네댓이 모여서 여행을 하는구나 싶었다. 무슨 유행인가? 찻길을 건너 조금 걸어들어가자 바다에 기대어 사는 마을이 보였다. 집들은 낮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입구부터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알리는 간판들이 보였다. 시큰둥하다. 여기도 그렇고 그렇구나. 제주도 토박이들도 신기해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곳으로 왔다. 바다는 예뻤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은 아니다. 흥이 깨진 마음과 피곤한 몸을 질질 끌고 바다도 보고 동네 구경도 했다.
바다는 예뻤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왜일까? 토박이들이 모여 사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도시에서나 보던 카페와 미끈한 건물들이 들어선 모습은 왜 마음에 들지 않을까. 카페가 못마땅한 것이 아니라 카페와 건물과 간판의 모양이 싫은 건가? 동네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디자인이 아니어서일까? 왜 소문난 장소들은 비슷비슷하고 거기서 거기일까?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갈 만한 카페를 기웃거렸다. 며칠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찍어 놓은 사진은 많은데 할 말이 없다. 일기를 쓰는 것도 어렵다. 가만히 앉아서 뭔가 쓰고 싶었는데 마땅히 눈이 가는 곳이 없다. 관광지 냄새가 나서 그런가?
결국 카페로 들어갔지만 오래 있지는 못했다. 커피 맛도 별로다. 앉아 있는 것이 불편했다. 전에 갔었던 하가리의 카페가 생각났다. 그곳의 공간 디자인을 좋아한다. 주인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의자가 편했다. 의자의 높이는 대략 400~450mm면 된다는 공식이 있다. 테이블은 700mm 정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하가리의 카페에서 앉았던 의자의 높이와 등받이의 각도는 어딘가 달랐다. 오래 앉아 있었는데도 편안했다. 미세한 지점의 각을 살렸다고 생각했다. 만든 이가 세심하게 신경을 썼을 것이라 짐작했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 보기보다 쉽지 않고 재미있는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집을 만드는 일도 그런 구석이 있지.
이제 뭐하지? 바다도 커피도 일기도 마음에 붙지 않는다. 오늘은 아닌가 보다 하고 나왔다. 숙소로 가야지. 돌아오는 버스에는 사람들이 통로까지 꽉 찼다. 여전히 냄새가 났다. 태반이 여행객으로 보였다. 짜증을 누르고 손잡이를 붙들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할까?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왜 돌아다니는 걸까? 자극이 되기도 하지. 새로운 장소나 모르는 동네에 가면 느껴지는 게 있지. 그런 것 보려고 다니는 것이겠지. 그런가? 세상의 끝까지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다. 가봤자 여기와 다를바 없을까?
새벽에는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배낭을 메고 비닐 우비를 걸치고 자전거 짐 받이에 가방을 묶고 달리고 있었다. 대체로 젊어 보였다. 일부러 고생해가며 여행을 하고 있구나. 저렇게 달려서 어디에 닿을까? 결국 돌아가야 하는데. 고생을 하면 사람이 성장하나? 그렇지. 성장하지. 무의미한 고생과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분명 있지.
재미없다. 비도 바다도 모래도 카페도 지겹다. 공사는 후반부로 들어섰다. 이제 마감을 향해 달릴 것이다. 어서 끝내고 집에 가야지. 가서 자야지. 자다가 일어나 그림을 그려야지. 뭘 하고 살아야 좋을까. 빗속을 뚫고 달리게 하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은 모두 심드렁하다. 귀찮고 재미없고 지겹다. 어느 사이에 제주도가 익숙해졌다. 낯선 지방에 있다는 호기심이 줄어들었다.
여자가 전화를 한다. 빨간 유모차에서는 아이가 잠들어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기르고 직장에 나가 돈을 번다. 돈을 벌어 마트에서 쓴다. 차도 사고 집도 사고 라면도 사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지겹다. 낮술도 지겹고 저녁 술도 지루하다. 차라리 땀 흘리며 일이나 하고 싶다. 생각 없이 지루함 없이 벽에 나사못을 박고 청소를 하고 석고를 자르고 바지에 진흙 묻히며 노가다나 하고 싶다.
뭐라도 될 것 같던 청춘은 지나갔다. 비행기도 날아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에는 남자 혼자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차들은 달려간다. 비는 그쳤다. 해가 났다. 아니다, 비가 내렸다. 덤프 트럭이 지나갔다. 물이 튀었다. 남자가 물을 뒤집어 썼다. 이십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추억을 뒤집어 쓴 남자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깔깔깔 웃었다. 구겨진 지폐처럼 답답해졌다. 반복되는 하루와 되풀이되는 기억으로 힘이 든 남자는 수박을 바라봤다. 꼭지가 잘린 새끼 수박들이 길가에 뒹굴고 있었다. 과수원 과실수 사이로 고양이가 보였다. 어미의 젖에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달라 붙어 있었다. 어미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남자를 보다가 다시 감았다. 남자는 자신의 새끼를 생각했다.
고양이만한 행복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양이 도로를 내리 쪼고 있었다. 아니다, 비가 아스팔트에 구멍을 뚫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쏟아지는 빗속으로 남자가 걸어갔다. 이 길을 지난 사람들이 얼마일까? 이 길에서 살고 죽은 이들이 얼마일까? 살아있다는 것이 꿈처럼 멀다. 기억의 굴곡을 더듬다 보면 여태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쩌자고 비 내리는 꼴은 이모양인가?
어쩌자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