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7일 / 또다시 작심삼일 병에 걸렸다.
다시 작심삼일병에 걸렸다.
이 병은 불치병이다.
안심되는 건 이 병은 흔한 병이라는 것.
마치 뭐라도 할 수 있을 듯 시작하다, 아주 작은 벽에 톡 부딪히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병이다.
그래도 다시 걸려야겠다.
그렇게 작심삼일병에라도 걸려야 뭐라도 시작하지 않으려나?
갑자기 나는 뭐에 꽂혔길래 또 이러는 걸까?
브랜딩을 해 보고자 어숩잖게 여러 책을 뒤적여봤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가 내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요목조목 옳은 이야기로 엮여있는 책을 보면서, 깊은 탄식 한 가지가 내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젠장, 나는 비어 있구나.
정작, 이야기를 쓰고자 했는데, 쓸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마주하게 돼버렸다.
말하자면, 나는 뾰족한 무엇이 아무것도 없는 40대 아주머니라는 걸 각성해 버렸던 것이다.
책은 쉽게 40대의 일상, 당신의 일상에 대해 꺼내 보세요. 라고 말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2학년 우리 둘째에게 방금 읽은 책에 대해 느낌을 써 볼까?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둘째는 느낌을 써 보라는 말을 지구 멸망처럼 느끼는 굉장히 센서티브 한 남자다.)
스팸으로 할 줄 아는 요리가 숟가락으로 퍼먹기인 자취생에게 이제 무스비를 차려봐, 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밥에 스팸만 얹으면 되는 요리지만, 자취 신입에게 무스비라는 언어가 주는 압력은 해저 2만 리와 같지 않을까? (순전히 내 상상이지만)
아무튼,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못 쓰고 있었더랬다.
인정했다.
게으른 몽상가이지만, 살림도 드럽게 못하는 전업주부이지만, 애들도 못 키우는 삼 남매 엄마이지만,
그렇지만,
글은 쓰고 싶고,
그림은 그리고 싶다.
죽기 전에 연극도 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욕망에 꿈틀대면서, 하다 말다, 잡다하다, 집중하다, 어지럽다, 정리되다, 하는 게 나다.
그냥, 나답게 철없게 살고 싶다.
그게 이 생에서 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뭐라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