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현 Mar 25. 2024

아무튼 서태지3-싸움꾼 서태지

103 서태지의 반항과 비판의식 - 시대유감, 교실이데아, 틱탁 etc.

틱탁T'IKT'AK - 저항, 반항, 시대에 대한 비판 의식

연관된 노래-교실이데아(3집), 시대유감(4집), 인터넷전쟁, 탱크, 대경성, 오렌지, 울트라맨이야 (6집), Victim, Live Wire, FM Business(7집)


서태지는 반항아인가? 적어도 1, 2집 때는 그렇지 않았다.


92년과 93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는 정말 비교할 데가 없을 정도였다. 길거리 가판대에 나와 있는 온갖 종류의 신문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습이 실렸고 잡지마다 그들과 인터뷰를 하려고 줄을 서고 방송마다 서태지를 출연시키려고 혈안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앨범작업 한다고 잠수하는 서태지에 대한 방송국의 일제 공격, 서태지 죽이기가 무색하게 2집마저 하여가를 필두로 우리들의 추억, 마지막 축제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10대의 전무후무한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3집으로, 발해를 꿈꾸며라는 통일 이야기, 교실 이데아라는 교육문제 정면 비판으로 돌아왔다. 타블로의 말에 의하면 '그 형이 그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그는 이미 탑이었고 그대로 소년 소녀들의 워너비로 계속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사탄의 소리'가 들어있다고 공격받은 교실이데아였다.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면 '피가 모자라'라는 사탄의 소리가 들린다는 루머가 방송 뉴스를 타고 나올 정도였다는 것은 그때 세상이 받은 충격의 크기를 반증하는 것과 같다. 교회 목사한테서 서태지가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은 소녀팬들이 시디를 깨서 잔해를 서태지에게 보내기까지 했으니 아티스트의 곤혹스러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을 것이다.

결국 별별 억측으로 3집 활동은 원하는 만큼 하지 못했지만 '다른 하늘이 열리고' 3집 콘서트만큼은 전설로 기억된다. 그때, 안흥찬이 그로울링하고 검은 제복의 소년들이 떼로 춤을 춘 교실이데아 연주는 방탄소년단과 2017년 서태지 25주년 콘서트 때 그대로 재현했을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3집 때 비로소 팬이 된 내가 아쉬웠던 것은 이 콘서트를 직장이 바빠 못 갔던 것이다. 그 콘서트를 다녀온 당시 한겨레 신문의 김선주 논설위원의, 젊은 세대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열광적인 칼럼을 읽으며 후회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4집은 콘서트 없이 은퇴로 끝나버렸으니!)


됐어(됐어)이젠 됐어(됐어)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이젠 족해(족해)

매일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곤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커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https://youtu.be/4ost77cj92U?si=yaHF7lwCDnBWR9QB


2024년에도 공명하는 이 가사의 힘은 이것이 그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당시 진짜 동년배 인구는 전국에 9십만 정도 있었고 (지금은 24만 9000명이 한 해에 태어나는 걸 보면 정말 인간들 많았지 않았나. 이게 팬으로서 내가 조금 느긋하게 서태지는 오래 간다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때 서태지 음악을 들었던 인구수가 워낙 많았다!) 모두 비슷한 길을 걸으라 사회가 압박했다. 반골기질 타고난 서태지는 참을 수 없었다. 이게 아닌데 싶었던 그는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학교를 자퇴하여 최종학력 중졸로 남았다. 소녀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너에게를 부르던 '오빠'가 사실은 이렇게 '오백원짜리 닭곰탕'성격을 가진 록커였던 것이다. (이 오백원짜리 닭곰탕이라는 말은 신해철이 2008년, 서태지와 했던 토크쇼 'MBC 에브리원 신해철의 스페셜에디션 서태지 편'에 나온 말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전에 자신은 언더씬의 가난한 록그룹의 베이스 연주자였고 록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그의 삶과 가사는 일치를 이루며 크게 울렸고 서태지의 투쟁과 저항정신 이미지는 많은 사람에게 각인되었다.


이런 행보에 정점을 찍은 것은 4집의 시대유감 사태이다. 지금도 검색을 해보면 수없이 쏟아져 나올, '음반 사전심의'로 가사수정 간섭을 받은 서태지가 시대유감의 가사를 들어내고 악기연주 instrumental만 실어서 4집을 냈던 사건. 팬들이 공분하여 공연윤리심의위원회에 쓴 항의 편지가 트럭으로 배달될 정도로 쏟아졌고 정태춘 등 기존의 가수들이 이미 벌였던 음반 사전심의 제도 철폐운동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결국 성공했던 그 일은 가장 유명한 서태지 투쟁사 아닐까 한다.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 속에서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바로 오늘이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
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
오늘이야


시대유감은 교실 이데아와 달리 그 가사의 모호성으로 시간이 지나가도 새로운 해석이 가능했다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사실 인류 역사상 온 적이 없었고 '두 개의 달이 뜨는 밤'은 언제든지 시국이 하 수상하면 언제든지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그가 콘서트 때마다 부르던 시대유감은 그때 그때 새로운 함의가 담겼다. 2000년 태지의 화에서는 이유 없는 비난을 일삼던 찌라시 언론이 타깃이었고(추측이 아니라 진짜다. 그가 무대 위에 걸려 있던 거대한 스포츠 신문, 이유 없는 서태지 비난 기사가 담긴 신문을 한을 풀자면서 찢어버렸다) 2004년 7집 때는 한국 가요 역대급 넘버원 페미니즘 롹넘버 빅팀과 연결해 시대유감을 불러젖혔다. "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


이렇게 보자면 서태지의 반항적 기질에 부합하는 노래는 본격 록커로 모습을 갖춘 솔로 시절에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2000년 컴백하며 내놓은 6집은, 한 인간의 내면으로 트라우마로 침잠해 들어간 ㄱ나니 를 제외하고 오렌지, 인터넷전쟁, 대경성, 울트라맨이야, 탱크가 5개나 되는 곡에 비판의식이 담겼고 2004년 7집도 Victim, Live Wire, F.M Business 등 하드한 록 넘버에는 다 시대와 불화하는 아티스트의 자의식과 저항이 흐른다.


세월이 흘러 2009년. 8집에서 그는 이제 선명하게 저항하지 않는다. 가장 비판적이라고 할 넘버인 틱탁 T'IKT'AK을 보자.


약속된 시간 컨트롤 된 뇌파

내 창 밖에 다가온 재앙

저 날카로운 바람은 모든 걸 알고 있어

이 어두운 밤 더러운 싸움 진실 카운트


T'IKT'AK 시간의 속도를 감지 못한 이 걸음 바쁜 종말에

다른 바람 섞인 이 온도의 차이

T'IKT'AK 뚜렷한 가치를 담지 못한 너의 텅 빈 Brain

A new order for the world. Why you can't cry?

...

이 맑은 산소와 태양, 바람 모두 충분한데

대체 왜 너는 왜 어째서 이렇게도 외로운 걸까


꺾어야 할 적들은 '뇌파를 컨트롤'하고 '재앙'을 가져와 '더러운 싸움'을 벌인다. 그들은 '텅 빈 브레인'을 가지고 '시간의 속도'를 모르고 세계를 멸망시킨다. 근데 그들은 특정한 누구도 아니다. 굳이 따지면 욕망으로 뭉쳐 세상을 파괴해 온 인류일 것이다. '맑은 산소와 태양, 바람이 모두 충분한데'라는 가사는 자연을 사랑하는 그가 환경을 망치는 세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걸 알게 한다. '온도의 차이'라는 말이 8집 이후 그의 환경운동의 캐치프레이즈로 사용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학교를 고발한 교실 이데아나 음악시장을 비판한 FM Business의 생생함, 자신의 경험에서 나와 모두를 전율시켰던 리얼리티는 틱탁에 없다. 2009년 서태지 심포니에서 틱탁이 환타지아라는 이름으로 연주된 것이 그래서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https://youtu.be/V4zlSA81kSU?si=_qz07YBrrSmKZM9T)


2014년 9집에는 비판적인 록넘버라고 할 노래가 아예 없다. 자신을 일개 90년대의 아이콘으로, 언제 물러가야 할지 몰라 때를 보고 있는  한물간 가수로 묘사한 수록곡 '90's ICON'에는 '전쟁도 끝났죠, 나의..' 라는 가사가 있다. 그의 투쟁은 끝났는지도 모른다. 음악저작권 협회와의 세기에 걸친 법정소송도 다 완결되었고 결혼과 딸의 탄생으로 개인적으로도 안정을 찾았다.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인생. 누구나 자신의 편안함에 닿기 위해 젊은 날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라면 10집을 내지 않는 그가 그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라고 쓰고 이 장을 끝냈으면 참 멋있었을 텐데. 불멸의 시대유감이 결코 죽지 않고 또 돌아왔다. 2024년에도 그가 새로운 마스터링으로 시대유감 가사 비디오를 선보였으니 말이다. 그가 현재 2024년 대한민국에 할 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도 전혀 억측은 아니다. 워낙 그는 음악으로 말해왔기 때문이다. 데뷔 이후  하고 싶은 말을 아홉 개의 음반 안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서태지씨. 언제라도 좋으니 또 만져서 또 던져주길.)

https://youtu.be/hxENwcFvL3w?si=0G2zs2_Pe6Sexkxz


*사족-이 글은 제가 언젠가는 모아서 내려고 생각하고 있는 브런치 북 '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의 들어갈 음악글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제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쓰고 있고 언젠가는 서 말의 구슬이 꿰어지지 않을까 바래보는 것뿐. 그리고 10집을 내지 않는 이유를 주절거리고 있으면 그가 혹시 10집으로 제 뒤통수를 쳐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튼 서태지2-그가 이룬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