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공원을 거닐다 보면 다른 공원에 비해 유독 자연과 가깝게 느껴지고 휴식하기 좋은 공간이 있다. 똑같이 도심 속에 자연을 조성해 놓은 공간인데 왜 어떤 공원은 별로 쉬고 싶지 않고 어떤 공원은 하루 종일 있어도 계속 있고 싶을까? 좋은 공원을 만드는 여러 요소들이 있을 텐데, '단' 또한 자연친화적 공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 주변에 다양한 층을 만드는 요소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도로와 인도 사이의 연석, 집 앞 화단을 구성하는 화단석, 건물 입구와 인도 사이의 단, 1층과 2층을 올라가는 계단, 공연장의 무대, 교실의 단상 등 어딜 가나 크고 작은 층이 나뉘어 있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는 일상의 요소지만 층, 즉 레벨을 만드는 단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경계석을 통해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는 화단
층은 물리적, 의미적 제약을 만든다. 자동차가 인도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의 발길이 화초를 망가트리지 못하게 하고, 빗물이 건물에 넘쳐흐르지 못하게 한다. 층을 오르려면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높은 계단을 마주하면 심리적으로 꺼려하기도 하고, 영역을 구분해 주인공과 관객을 나누며, 시야에 차이를 두어 권위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의 레벨을 다르게 만드는 방식으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간단하게 조성할 수 있다.
경계가 없는 자연과 인간의 영역
반대로 층이 없으면 제약도 약해진다. 층은 경계를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경계를 인식하게 할 다른 요소가 없다면 서로 침범할 수 있는 공간임을 의미하게 된다. 이를 이용해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화단의 경계석을 없애면 분리된 공간이라는 인식이 약해지고 자연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느낀다. 자연과 인간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공들여 설계된 공원, 정원을 보면 일부러 층을 없애 인간과 자연을 같은 레벨에 둠으로써 우리가 조금 더 자연에 가깝게 느껴지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경계석 대신 철판을 두른 화단
이미 조성된 땅에 화초를 배치하고 싶을 때는 땅을 다시 파기보다 단을 세울 때 비용이 더 저렴한 조건에서 어쩔 수 없이 화단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정원을 조성하는 상황이라면 사람들이 딛는 땅과 같은 레벨에 정원을 조성하는 편이 더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식물의 보호를 위해 출입을 제한해야 한다면 물리적으로 영역은 구분하되 접근을 제한하는 큰 느낌을 주지 않는 선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최근에 많이 사용하는 얇고 긴 회색 철판을 식생 영역의 테두리에 심는 방식이 적절한 예시가 될 수 있다.
도심 속 자연을 접할 때 유독 편안하거나 유독 불편한 공간을 마주한다면, 자연과 인간의 영역이 어떻게 경계를 이루고 있는지 살펴볼 때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