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길을 거닐다 보면 벤치 가운데에 손잡이가 붙은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벤치의 전체적인 형태와 동떨어진 모습인걸 보면 나중에 따로 만들어 설치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갑자기 가운데에 손잡이가 붙어있는 벤치가 왜 이렇게 생겨나게 된 걸까?
손잡이가 붙은 벤치
손잡이는 사용자의 앉는 행동을 보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노인, 임산부, 몸을 가누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자세를 취할 때까지 붙잡고 의지할 만한 수단이 있다는 게 꽤 도움이 된다. 그러나 벤치의 가장자리도 아니고 가운데에 떡하니 붙어있다는 점, 또는 팔걸이가 있는 벤치의 경우 팔걸이가 이미 손잡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만든 이의 특정 의도가 따로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알아보니 벤치 가운데에 굳이 손잡이를 붙인 이유는 사용자의 노숙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내내 손잡이라고 생각했던 장치는 손잡이가 아니라 칸막이었다.
UX 디자인의 창시자인 도널드 노먼은 물체의 성질이 사용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특정 행위를 불가능하게 하는 특성을 '반행위지원성'이라고 부른다. 칸막이가 물리적 제약으로 작용해, 기존 벤치가 가진 눕는다는 행동의 행위지원성을 차단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해외에서도 흔히 있는 사례인 것 같다. 특정 부류의 사람을 배제하는 이런 방식은 '적대적 건축'이라고 불리며 비인도적 조치라는 주장에 따라 논란이 있는 문제로 남아있다.
벤치에 칸막이를 설치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를 떠나 이 글에서는 논리적 문제해결 관점의 의문을 다뤄보려고 한다.
손잡이가 붙은 벤치
칸막이 벤치에 대한 이슈를 찾다 보니 기존 벤치에 칸막이를 붙이는 게 아니라 새로 제작하는 벤치에도 칸막이를 설치해 판매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아했다. 비용 문제만 보면 원래 있던 벤치를 그대로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손잡이만 따로 붙이는 편이 저렴하다고 생각해 납득은 간다. 그러나 새로 만드는 경우에도 벤치에 칸막이를 붙인 모습은 합리적인 형태인가?
사용성 관점에서, 제품은 여러 조건에 따라 형상이 결정된다. 도널드 노먼은 사용자가 제품과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하려면 제품이 어떤 물건이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이러한 성질을 '발견가능성'이라고 부른다. 발견가능성은 '행위지원성, 기표, 대응, 피드백, 제약, 개념모형'이라는 요소에 의해 충족될 수 있으며,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을 만드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으로 손꼽힌다.
이 개념을 알면 몇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벤치에 여러 제약 중에 왜 하필 '칸막이'라는 제약이 필요한가? 벤치가 길기 때문에? 벤치는 왜 긴 형태인가? 관상 목적이 아닌 실용적 관점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물건은 목적에 따라 필연적 형태를 가진다.
벤치는 긴 형태를 취했을 때 가지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물건이다. 기다란 벤치는 다양한 체형의 사람이 앉을 수 있고 여러 사람이 자유롭게 거리를 선택해 앉을 수 있으며 짐을 같이 올려 둘 수 있는 등 다양한 행위를 지원한다는 장점이 있다.
칸막이를 설치하면 벤치의 본질 된 기능을 저해하지 않을까? 벤치에 칸을 나눌 거라면 벤치가 굳이 길어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우리는 임시방편으로 기워 붙인 듯한 방식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의 제약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목적이 눕는 행위를 막기 위함이라면 눕기 불편한 길이로 만들 수 있다. 태생의 형태가 눕는 행위에 대해 반행위지원성을 가지게 된다. 긴 벤치 하나를 두기보다 기존 벤치의 반 정도 길이를 가진 벤치를 두 개 두는 편이 더 나은 조치일 수 있다. 굳이 전통적 형태를 만드는 관습에 얽매여 서너 명씩 앉을 수 있는 길이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앉는 행위가 발견 가능하다면 무엇이든 벤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뮤지엄 산의 야외 벤치
비용 증가가 걱정일 수 있다. 벤치 두 개에 네 명이 앉는 것보다 벤치 하나에 네 명이 앉으면 제작 비용을 더 절감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는 칸막이가 없을 때 얘기이다. 실제로 사용해 보면 칸막이는 인원 수용 관점에서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다. 체형에 따라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상황에서 두 명 밖에 못 앉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다른 형상으로 두 개를 만들면 어떠한가. 비용 문제는 얼마든 해결 가능하다. 또는 앉기는 편한데 눕기는 불편한 형태로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기성 제품이 가진 형태의 틀에 갇혀있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제품이 형태의 필연성을 충족하는지 따져야 한다. 제품에 붙는 요소 하나, 하나에 합리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간단한 해결책이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맥가이버리(Macgyvery)한 선택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