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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Dec 19. 2023

여보, 당신과의 일을 글로 쓰고 있어

내 일기장을 공개하는 기분



남편은 평소보다 진하게 오는 두통에


"왜 이러지... 여보 나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아프지"


라며 인상을 찌푸린다.


"머리 만져줄까..?


"응.."



남편이 말하는 부위를 한참을 눌러주는데

효과가 없나 보다


"뭐가 문제지..?"


'당신 머릿속에 있는 그 나쁜 암덩어리가 문제겠지..'



겉으로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키며 권했다


"마약성 진통제 먹을래..?"


"그래 하나 먹자.."


남편은 약을 삼키고 진통제 효과가 돌길 기다리다 이내 잠들었다.


남편이 찡그리고 눈감고 있느라 모르던 그 사이,

내 눈에서 숨죽여 흐른 여섯 방울의 눈물이 흘렀다








입맛이 없는 남편을 위해 매일 점심은 거의 나가서 먹고 있다. 나도 일하지 않고 남편은 일을 못하는 상황이고 비보험인 항암제 때문에 카드값은 한도가 초과되어 돌려 막기하고 있지만, 밥 먹고 커피숍에 가서 음료 한잔 도란도란 나눠먹는 여유까지 부리면서. 이래서 내가 철딱서니가 없다는 거다.



아 한 달에 병원비만 오백 가까이 깨질 줄 알았다면

남편이 조금이라도 괜찮았을 봄, 여름 가을에 일 좀 해둘걸 하는 후회가 든다.

보험금은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남편은 상황이 더 나빠지니 점점 초조해진다.



남편이 먹고 싶단 양평해장국을 먹고 집에 가던 길, 친구가 '1년 생존기념'으로 준 쿠폰으로 커피숍에 들러 오곡라테를 시켰다.

몇 번 먹어서 결제가 안 될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결제가 넘어갔다. 이다음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군.


빨대 하나 가지고 쪽쪽 번갈아 먹다가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  나 당신과의 일을 글로 쓰고 있어"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했다.

할까 하지 말까 고민이 들 땐 하지 않는 게 맞다는 말을 무척이나 동감하지만, 남편이 죽고 나서 듣지도 못하는 그대에게 "나 사실 당신과의 일을 글로 쓰고 있어" 라며 혼자 슬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잖아? (웃으면서) 오빠가 보고 싶으면 봐도 되는데, 상처받을까 봐 그게 좀 겁이 나네"


"내가 상처받을게 뭐가 있어.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건데"


"보고 싶을 때 말해. 언제든지 보여줄게"


"그래"




아마도 남편은 내 글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나에게 준 상처를 스스로 휘저어 꺼내보는걸 가장 두려워하고 마음 아파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남편에게 내 일기장을 꺼내놓았다.

하지만 남편은 내 일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읽어볼 용기를 내지 못할 거 같다.


아프지 말자. 매일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는 말..  아프지 말자. 아프지 말자.


싹 다 나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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