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험담을 작정하고 보자면 주야장천 풀어 8개 정도 글을 쓸 수 있겠지만^^; 제가 어찌하여 남편을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아내는 기어코 누워있는 남편의 흉을 보고야 말았는데 반대로 제가 철딱서니가 없기 때문에 작금의 상황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편에게도 말했습니다! 여러모로 합법적(?)인 흉입니다.
'제가 이런 상황으로 너무 힘들어요. 저 너무 불쌍하죠?'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시작한 글이 아니에요. 언젠가는 모두 당도할 죽음의 상황을 남들보다 좀 더 일찍 당겨옴으로써, 서로에게 했던 모진 말과 행동에 대해 저와 남편이 서로를 용서와 이해하고 다시 사랑하는 과정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겪은 일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깨진 유리조각은 붙여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의 글을 보신 독자분들 중 "한분이라도 사랑하는 아내나 소중한 가족들에게 꽃 한 송이 사들고 들어가셨으면 좋겠다" 하는 염원을 담고 '남편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자신 있어'의 글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행동이 정말 악의가 있어서 하는 일인지,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렇게 대한건지 한 번쯤 재고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매 글마다 작은 염원을 담아 독자님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글을 쓸 예정입니다. 저와 남편을 보고 반면교사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저는 남편을 용서하지 못할 줄 알았어요. 남편이 첫 번째 수술을 들어가면서도 눈물 딱 한 방울 흘렸던 표독한 인간이 저였으니까요. 남편이 제게 준 상처가 아물지 않았었고 남편은 언젠가 한번 아플 거 같단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어서 의외로 덤덤한 시간을 지났습니다. 그런 제가 얼마 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나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12년 동안 금이 가 붙일 수 없다 생각했던 제 마음이 깨지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자기 전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아직 따뜻함에 안도하고 다음 날 식어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눈물이 흐르던 날이었습니다.
교모세포종 환자의 평균 생존율은 14개월에서 18개월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23년 11월에 1년 생존기념 돌 떡을 먹었으니 이제 13개월 차예요. 그리고 그날은 14개월이 한 달 남았음에 초조해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아직 거동이 가능하고 하루에 짧은 산책도 격일로 나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남편을 웃기기 위해 오늘도 옆에서 조잘거리지만 남편의 통증이 심해짐에 따라 남편도 저도 조금 여유를 잃은 나날입니다.
브런치 북을 연재해 나가면서 눌러주시는 구독과 라이킷 하나하나가 저와 남편에게 "건강해라" 그리고 "살아라"라 주시는 메시지인 것 같아 감사해요. 그래서 오늘도 힘을 내겠습니다!
나름(??)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아요
남편이 두 번째 개두술(머리를 여는 수술)하고 왔는데 스테이플러로 팡팡팡 찍은 봉합부위가 살이 단차처럼 어긋나 있어서 "아니 아니 기왕 머리 붙여주는 거 좀 잘생기게 붙여줄 것이지 이게 뭐람!" 하면서 씩씩거렸던 기억도 있고..(쓰고 보니 호러 같기도 한데..) 남편이 방귀를 뀌면 "어이구 소화 잘되는구나" 박수를 치며 좋아합니다
지나온 글을 보니 좀 더 담백하게 적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렇게 성장해 나가는 것도 제 인생의 일부라 생각할게요. 훌륭한 시부모님과 시누가 있는 것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기적이 오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도 기적이 행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