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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Jan 11. 2024

브런치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구독자 293분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정해진 시기와 정해진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운명론자입니다. 운명론자라 자칭하는 말은 굳이 따지자면 저의 게으른 성향을 변명하는 말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도 '내겐 아직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어'라고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될 수 있거든요.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본인을 굉장히 낙천적인 운명론자라 칭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편과의 첫 만남도, 병간호를 하다 생각한 아이디어로 정부지원사업을 하는 것도,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것도 모두 어느 날 갑자기 신의 계시처럼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멍하니 있다가 '어? 나 이거 지금 시작해야 하는 거 같은데!'라고요.


그날도 계시처럼 '나의 일을 글로 써야겠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블로그는 너무 식상하니 블로그가 아닌 다른 매체가 어디 있을까 생각하다가 언젠가 우연히 들었던 브런치를 떠올렸습니다. 브런치도 블로그처럼 아무나 글을 올릴 수 있는지 알았던 브런치 초짜는 '글을 올리는 자격'을 얻기 위해 테스트(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과 내용을 적고 브런치에게 심사받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도 몰랐었지요.


23년 12월 4일 '글을 쓰겠다'라고 맘먹고 12월 5일은 승인받기 위해 '그대, 제발 살아요'의 프롤로그와 2개의 글을 적었습니다. 정신 산만한 성격만큼 글 몇 개는 앞으로 발행할 글의 제목만 적어 놓았습니다. 이때 '남편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자신 있어'의 글도 적고자 하는 몇 개의 키워드와 제목만 적어 두었습니다.


승인 신청이 났는지 결과를 기다리며 메일함과 브런치를 들락날락거렸고 정확히 3일 만에 승인이 떨어져 12월 8일부터 글을 올릴 자격이 부여되었습니다. 브런치 매거진? 브런치 연재북?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니 승인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적어두었던 글 3개를 동시 발행했다가 연재라는 시스템을 알고 다시 발행 취소하는 실수도 있었습니다.       


첫 글을 올리고 참 신기했었습니다. 한 분 두 분 라이킷이라는 것을 눌러 주시더군요. 첫 구독자도 생겼습니다. '정말? 내 글이 좋다고!?' 저는 너무 기쁘고 신이 났습니다. 세 번째 글이 브런치의 선택을 받아 순식간에 조회수가 터지고 조회수가 1000, 2000, 3000 올라가는걸 눈으로 보고 있자니 재밌다가도 남편을 험담하는 내용이라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악플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오 나 좀 인플루언서인 듯?' 하면서 넘겼는데 무작정 비난하는 댓글을 받으니 그리 태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긴장했는지 답댓글을 다는 내내 어깨가 덜덜 떨리는 경험도 했습니다. 물론 제 글의 99.8%는 선플입니다. 여러분이 주시는 응원과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저의 연재와 함께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기적을 바란다고 말해주시는 댓글은 그날그날 남편의 귀에 속삭여 주었습니다.


주시는 댓글 중 저를 유독 기쁘게 하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제 글을 기다리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 제가 밤새워 글을 쓰기를 바라지만 병간호를 위해 참는다고 말해주신 댓글에 웃음이 터졌고 서유럽에서도 저의 연재를 기다리신다는 댓글에 두근거렸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기다려 주신다는 말이 왜 그리 설레던지요.


 부끄럽지만 저는 글을 소비할 줄 모르던 사람입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도 어디선가 듣기만 했었지 들어와서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본 적도, 일 년에 책 한 권을 진득이 읽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제 글을 올리면서 다른 분들의 글도 읽게 되었습니다. 다독(多讀)을 양분으로 탄탄히 다져진 작가님의 글을 보다 제 글을 보면 한없이 초라한 저의 글솜씨에 주눅이 든 날도 있었습니다.


저도 살면서 글로 칭찬을 받은 경험이 몇 번 있습니다. 남편이 아프기 전, 한동안 빠져있던 커뮤니티에선 제가 쓴 유머글을 보고 너무 재밌다며 부산에서 절 보러 오겠다는 분도 계셨었었고 저와 친해지고 싶다고 커피쿠폰을 보내주는 분도 계셨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며 밥을 사주겠단 분도 있었고 그분들은 모두 여자분들이었습니다. 그중 몇몇은 실제로 만나 친분이 생기기도 하였고 한 인연은 소중히 번져 아직도 연락하며 저의 인간관계 중 가장 친한 한 명이 되는 경험도 있었습니다.


 드라마 보조작가였던 친구가 지금은 엄청난 한류드라마가 된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집에 잠시 놀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어떤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대단한 배우들이라 입이 떡 벌어지면서도 그런 드라마를 쓴다는 친구가 참 대단하고 부러웠습니다. 드라마의 배경 상 주인공이 있는 특수한 지역을 조사하는 자료와 함께 친구가 참여하는 시나리오가 탁자에 놓여 있었습니다. 다음 내용이 잘 안 써진다는 말에 친구가 운동하는 틈을 타 메모지에 생각한 내용을 조금 적어 올려놓았더니 그걸 본 친구가 "너 글을 한번 써봐"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냥 남들보다 조금 말장난을 좋아해 재치가 있다 정도였을 겁니다.


그렇게 미약한 글재주의 제가 브런치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서툴었던 첫 글을 시작으로 안타까운 상황을 응원해 주시고 제 글을 기다려 주시는 293명의 독자분들이 생겼습니다. 그분들에게 실망감을 드리지 않기 위해 좋은 글을 많이 소비해서 글솜씨를 늘리고 싶은 바람도 같이 생겼습니다.  


아직도 작가라는 말은 저에게 너무 어색하고 맞지 않는 옷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작가라 불러 본 적도 없습니다. 제 글과 상황이 평가받을까 봐 주변사람들에게 당당히 글을 적는다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브런치에 글을 적는 걸 아는 사람은 남편, 2화의 주인공인 친한 언니, 그리고 제 아이 두 명밖에 없습니다.

그 마저도 부모님의 치부를 들추는 일이라  아이들에게는 제 글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작가소개를 적어야 합니다. 원래 직업이던 웹디자이너?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니 사업가? 플로리스트? 꽃차 소믈리에? 나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쉬고 있으니 추후에 나의 정체성이 정립될 때 다시 바꾸겠노라 다짐하며 주부라고 적었습니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직군의 작가님들이 모인 브런치에서 평범한 주부라고 적기가 참 민망합니다. 곧게 잘 뻗은 대나무 숲 속에서 이방인마냥 자라난 작은 풀 한 포기가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저리 곧고 높게 뻗은 대나무 틈에 이질적인 느낌 없이 섞이고 싶다는 소망으로 도약했습니다.


해가 시작되면서 가진 목표가 있습니다. 구독자 500명이 모이면 작가소개에 에세이스트라고 적기로요. 500분 정도 제 글을 기다려 주신다면 어느 정도 에세이스트란 말의 자격이 주어지겠다고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했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글이 다소 장황했지만 부족하게 시작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제 글이 제 운명이 따라오게 만든 결과라면 구독자님들을 만나게 된 것도 제 운명이지 않을까요?


그대, 제발 살아요의 연재를 끝내는 날을 상상합니다. 이 연재의 끝은 어찌 될까 두렵습니다. 연재가 끝이 나면 나와 남편의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끝이 날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내가 쓰는 글이지만 이 글의 끝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연재를 합니다. 저도 모르는 앞으로의 이야기, 운명처럼 같이 지켜봐 주세요. 주시는 댓글 항상 감사히 생각합니다. 글을 읽고 보내주신 댓글과 라이킷은 너무 소중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없다면, 그리고 애정으로 달아주시는 댓글이 없다면 이 글은 그냥 저의 일기장이 되겠죠. 저의 글이 저만 보는 일기장이 되지 않게 도와주시는 구독자님이 계셔서 제가 글을 적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구독자님들과 함께 성장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실 거죠?


마지막으로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께서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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