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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Feb 15. 2024

손 자주 씻는 것도 죄가 되나요?

눈치가 보여요


이틀 전 병실에 50대 남성 환자가 새로이 들어왔다. 그의 보호자인 아주머니께서 하루 밤을 자더니 남자 간호사에게 자리를 바꿔달라 요청한다.


세면대가 붙어있는 자리라 불편한다는 것이 병상교체요청의 이유였다. 수술을 앞두고 있고 수술 후엔 회복을 해야 하는데 세면대에서 자꾸 손을 씻으니 신경 쓰여 스트레스받는다며 호소한다. 바로 문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터라 마침 문을 통과하며 이야기를 듣게 된 나는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 이거 내 얘기네'


세면대 자리 보호자와 우리 병상 바로 앞자리의 보호자, 그리고 한 명의 남자 간호사 셋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두 명의 보호자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나는 깔끔하거나 깨끗하거나 결벽이 있거나 하지 않다. 다만 남보다 손을 자주 씻는다. 세안은 안 해도 손은 씻는다. 내가 봐도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되지만 그냥 그게 나라서 이상해도 인정했다.


놀이터 한켠 소복이 쌓인 모래사장에서 흙놀이를 즐기고 빨간 벽돌을 빻아 소꿉놀이를 하던 어릴 적의 나는 손을 자주 씻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터득했다.


 '손을 자주 씻었더니  자주 오던 감기가 걸리지 않네?'


손 씻기를 자주 할 명분은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런 내가 유난스럽게 손을 씻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도 손을 자주 씻는데 씻지 못하는 남편을 만지고 돌보니 또 얼마나 손을 자주 씻었겠는가.

모르핀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편의 소변시중을 보려면 내가 조준해 줘야(?)한다.


하루에 열 번 넘게 소변시중을 들다 보면(수액을 24시간 계속 맞기 때문에 횟수가 잦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열 번이다. 그렇다고 매번 병실 세면대에서 세수(洗手)를 했던 것도 아닌데 그게 어지간히 짜증이 나셨던 듯싶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마뜩잖은 불청객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면대 자리의 환자와 보호자는 커튼을 끝까지 닫지 않는다. 매번 반쯤 열려 있어 내가 손 씻는 것이 보일 테고, 보이니 불편하고 손을 자주 씻는 내가 마뜩잖은 것이다.


그래도 병상교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처음 자리를 배정받을 때 그 자리밖에 없었고 다른 자리가 났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단순불만에  자리를 옮기는 수고와 인력, 세탁물 교체등의 수순이 이뤄지기에는 병원은 절대 한가하지 않다. 이러한 소동이 있을까 봐  첫 병상을 배정받을 때 간호사는 "자리는 한번 배정되면 바꿀 수 없습니다"라고 안내한다. 그리고 그 자리의 환자와 보호자도 그 설명을 들었다.


아니 다른 데는 자리를 바꿔주는데
왜 여기만 안 바꿔 주는 거예요?
이러면 먼저 들어온 사람들만
좋은 자리(?) 차지하고 나중 들어온 환자들은 불편한 자리만 주니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


세면대 자리가 불편하다는 말에 맞다고 이 자리가 참 불편하다며 그전까지 동조하던 내 앞 병상의 보호자는 그 아주머니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그건.. 아닌데 "


그 말을 끝으로 두 분이 사담을 나누시는 건 들을 수 없었다. 내 앞 병상의 환자와 보호자도 병실에서 장기투병하고 있는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내 앞병상과 우리는 모두 그분 입장에선 둘 다 먼저 들어와 좋은 자릴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선착순으로 배정받은 자리였는데 말이다.

먼저 아픈것도 유세라면 유세이려나?


통상 세면대 자리는 일반자리보다 더 넓다. 불편감을 감수하는 환자를 위해 일반자리보다 더 넓은 공간이 허락된다. 나는 손을 씻으며 그 환자가 들어오기 전 그 병상의 넓은 자리가 부러웠는데 아주머니께선 넓은 자리보단 사람들이 와서 손을 씻는 게 넓은 자리의 보상을 상회하는 불편감이었다.


자리교체가 이뤄지지 자 그 환자와 보호자 자리의 커튼이 꼭꼭 닫혔다. 닫혀 있어서 슬쩍 손 씻으러 갔더니 굳이 커튼을 챡- 열어 누구인지 확인하시곤 커튼을 다시 챡-  닫으신다.


사진은 두 분 다 수술실에 가셔서 빈 자리일때 찍었습니다


아유 눈치 보여라.

아주머니, 아저씨 저도 불편한 점이 있어요. 트림소리는 왜 그렇게 크게 내시나요. 방귀는  어쩔 수 없지만 트림소리는 매너 있게 조용히 하시는 방법도 있을 텐데 두 분은 크게 하시잖아요. 저도 그게 참 거슬리거든요. 우리 아픈 것도 서러운데 서로 조금씩만 참아요.


그리고 어차피 두 분보다 저희가 더 오래 있을 거 같거든요. 빨리 회복하셔서 댁으로 가시기를 바랄게요. 그전까진 눈치 보여서 세면대를 못쓰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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