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이면 그것도 안 맞을 거 같은데.. 좀 질질 끌려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더 작은 사이즈가 없으니 옷핀으로 고정해야 합니다"
장례식 첫날 오전, 상주들이 몇 분이신지 옷은 몇 벌을 어떤 사이즈로 준비해야 하는지 장례지도사님께서 물어오셨다. 올해 6학년인 딸은 나와 같이 55 사이즈를 입으면 될 일이었지만 키가 작아 1~2살 어리게 보는 아들의 사이즈는 선택지가 없었다.
제일 작은 상복을 받아 바짓단이 끌리지 않도록 여러 번 접어 옷핀으로 고정해 입혔다. 본격적인 손님맞이를 하기 전, 남편의 영정사진에 말을 걸었다. "여보.. 기어코 우리 애들 이 나이에 상복 입혀야 했어?" 망자는 말이 없다. 어린 나이에 검은 상복을 입은 딸과 아들은 내 옆에 서 나란히 손님들에게 절을 했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제단이 있는 방의 불과 향은 꺼지면 안 됩니다. 고인이 이승에 머무르실 수 있게 하는 통로이니 꺼지지 않게 해 주세요"
아이들에게 향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말을 했다. 향 태우는 게 신기했는지 2~3개씩 태워 이내 연기가 방 안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라고 혼내기도 해 보고 타일러도 보았지만 향 태우기에 재미를 붙인 아이들은 내가 한 눈 판 사이에 두세 개씩 불을 붙여놓고 서로 꽂겠다며 투닥거렸다. 손님들이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해 향이 꺼질 틈이 없어지자 비로소 아이들의 장난이 멈춰졌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서로 향을 꽂겠다고 싸우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천진해서 고맙다"
"천진해서 속이 상한다"
물론 아빠를 잃은 충격에 울고불고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천진해서 고마운 마음이 훨씬 컸다. 장례식 내내 조문객들께 "아이들이 천진해서(구김살이 없어서) 너무 다행이다"는 말을 족히 10번은 넘게 들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온 손님맞이를 곧잘 했다. 내가 남편의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다가 새로운 손님이 오신 것을 못 보면 달려와서 "엄마 빨리 오세요"라고 호출했다. 그러면 나는 서둘러 제단으로 들어가 첫 번째 자리에 섰다. 그럼 내 아이들이 내 옆으로 주르륵 섰다.
아이들의 학교에는 남편의 상태를 미리 언질을 해 둔 상태였어서 선생님께 길게 부연설명 할 것이 없었다.
"선생님 지온이 아빠가 오늘 새벽 임종하였습니다. 오늘부터 저희가 좀 데리고 있겠습니다"
"네 어머님..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머님만 괜찮으시다면 부고 메시지를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황망하실 텐데 죄송합니다"
첫째(지온이) 선생님께서 장례식장으로 찾아오셨다. 학기 초라 아직 학부모 상담도 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장례식장에서 아이 담임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란 말인가' 쓴웃음이 나오는 상태로 선생님께 절을 했다.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다 내가 앞에 앉아있으면 식사도 못하실 것 같아 자리를 비켜드렸다. 그리고 지온이에게 선생님의 앞자리를 지키라고 말을 했다. 지온이는 선생님이 오신 게 기뻤는지 밥을 드시는 내내 앞에서 웃으며 조잘거렸다. 30분 가량이 지나고 선생님께서 다 드시고 가시려고 하는 기색이 보여 얼른 달려갔다.
"어머님, 제가 지온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밝아서 안심이 되어요. 어떻게 하면 지온이 같은 딸을 낳을 수 있나요? 제가 지온이 같은 딸이 너무 낳고 싶어서요"
"저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다 아이들 덕이예요. 타고난 성품이 밝고 착해서 제가 아이들에게 외려 고마운걸요"
담임선생님께서는 아이를 보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이미 많이 씩씩해서 마음이 아팠노라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