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삼우제가 끝나고 아이들과 떠날 여행짐을 챙겼다. 대강 여행할 지역과 만나야 할 이들만 정해놓았다. 남편의 친구부부가 있던 서산, 지인이 있던 아산 그리고 제천이었다.
정확한 목적지도 어디서 숙박을 할지도 몇 박을 묵고 올지도 정하지 않은 상태로 발길이 닿는 대로 가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오기로 작정했다. 만나야 할 지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스케줄에 따라 아산부터 출발했다.
현관에서 짐을 빼며 어떤 신발을 신을까 고민하다 신발장을 열었다. 신발장을 여니 2달 전 남편이 사서 신발끈까지 묶어놓은 새 신발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디자인이 예뻐서 샀던 검은색 아디다스 신발이었는데 정사이즈를 샀음에도 불구하고 신발이 헐떡거렸었다.
"어~~? 이거 235 맞아? 왜 이렇게 커"
"이상하다. 맞는데.. 그래도 예쁘지?"
"응~예쁜데 이거 못 신을 것 같은데? 너무 커"
"한 사이즈 작은 거로 교환하자"
남편은 나와의 대화를 마치고 바로 업체에 교환신청을 넣었다. 전화까지 하며 꼼꼼히 체크하더니 업체에서 이 신발이 좀 크게 나왔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세일 기간에 샀던 신발이라 교환제품을 받는데 거의 2주일가량이 소요되었다.
다시 받은 230 사이즈의 신발도 좀 큰 것 같아 영 맘에 들지 않아 남편에게 그냥 반품하자 말했다. 남편은 디자인이 예뻐 네가 꼭 신었으면 좋겠다며 내게 신발을 신겨놓고 신발끈을 쫙 매주 었다.
나는 신발끈을 잘 묶지 못한다. 매듭을 묶어도 손길이 엉성한지 신발끈이 금세 풀어져 버린다. 20살 후반부터 만났던 남편은 언제나 내 신발끈을 묶어주었다. 그건 그의 몫이었고 신발끈이 풀리면 언제 어디서나 발을 내밀었다. 그럼 그는 군말 없이 내 신발끈을 쫙 매어주었다. 그렇게 묶은 신발은 한참이 되어도 풀리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매듭 묶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았다. 그냥 언제나 신발끈을 묶어달라하면 묶어주는 남편이 있었으므로.
'아.. 그 신발이구나'
남편은 죽었지만 남편이 묶어놓은 신발끈은 풀리지 않은 채로 견고했다. 얼마나 쫙 매어놓았는지 발등이 아플 정도였지만 그대로 신었다. 발등이 아프다는 이유로 생전 남편이 묶어놓은 신발끈을 풀고 싶지 않았다.
그가 사주었던새 신발을 신고 그가 묶었던 매듭을 가진 채로 길을 나섰다. 한 손에는 여행짐을, 한 손에는 남편의 영정사진을 종이백에 넣고 출발했다.
길을 가다 내비를 잘못 보거나 차선을 잘못 타면 꼭 남편이 생각났다. 길을 돌아가게 되자 "아유 아빠 옆에 있었으면 혼났었겠다"라고 아이들에게 농담을 했다. 남편이 잔소리를 하는 타입이 아니었는데도 실수할 때마다 옆에서 핀잔을 듣는 기분이었다.
남편이 죽고 난 뒤 처음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우산장을 여니 못 보던 새 장우산이 들어있었다.
"집에 쓸만한 장우산이 없어"라고 투덜대던 내 말을 듣고 그냥 넘기지 않았던 남편이 내가 모르던 사이 새 장우산을 두 개 구매해서 넣어두었던 모양이다. 첫 봄비가 오던 날 남편이 사두었던 우산을 집어 들고 눈물이 났다.
그것은 당신이 우리를 걱정하던 방법이었다
당신이 남겨진 나와 아이들의 앞날을 걱정하던 방법. 비 오는 날, 남편이 사둔 새 우산을 쓰고 새 신발을 신고 아이들과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