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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May 03. 2024

죽은 남편의 요리를 맛보았다

당신은 가고 없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당신의 흔적

"나한테 요리 안 배워도 되겠어?"

"안 배워~"

"(피식 웃으며) 진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어~"  


남편은 요리 자격증만 3개나 가지고 있던 요리사였다. 요리직업전문학교를 졸업해 25살 때부터 한정식당에 들어갔고 눈에 띄게 일을 잘했던 그를 본격적으로 키워보려 했던 회사가 일본으로 가서 일을 배워오라 지시를 내리자 나에게 일본으로 가겠냐며 의사를 물어왔다.


23세의 나는 남자 하나 믿고 외국에 나가기엔 겁이 무척이나 많았고 25세의 남편은 나를 두고 외국에 나갔다간 헤어질 것 같았기에 회사의 제안을 포기했다. 그리고 단골로 다니던 호프집이 매물로 나오자 이른 나이였던 26살에 가게를 인수해 장사를 시작하였다.  


사촌형과 같이 인수한 가게는 이미 입지가 잘 다져진 곳이었다. 게다가 남편이 요리를 매우 잘하고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에 가게는 늘 사람으로 붐비었다. 현상유지에 머무르지 않고 신메뉴 개발을 자주 했어서 신메뉴가 나오면 언제나 메뉴판 디자인은 나의 몫으로 떨어졌다.


친구들보다 빨리 돈을 벌게 된 남편을 보고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주방에 취직시켜 달라고 했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받아주었더니 몇 개월 동안 가게에서 일하면서 레시피를 다 빼돌려 같은 동네에 가게를 차리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무릎을 꿇고 한 번만 도와달라고 빌어 마음 약한 남편은 제일 바쁜 시간에 가서 2주간 도와주었다.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므로 컨설팅 비용 겸 레시피 인수비용을 100만 원가량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추후 그 친구가 내 남편이 돈을 받고 아무것도 안 해줬다는 식으로 소문을 퍼뜨려 그 친구와는 의절했다. (그리고 이 친구는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초대받았던 친구들에게 쌍욕을 시전하며 행패를 부렸다)




남편은 한식, 양식, 중식에 두루 능통했어서 뭐든지 아주 빠르고 요령 있게 요리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빠의 요리 중 까르보나라를 제일 좋아했었다. 남편은 본인가게에서 본인이 요리를 하면서도 나와 아이들이 가게에 가거나 배달시켜 달라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본인이 귀찮았던 이유도 있었겠으나 동업자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싫어했었다.


남편의 요리를 본격적으로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남편과 사이가 틀어지고 난 후였다. 나의 맘을 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남편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집으로 이것저것 만들어 왔다.


어떤 날은 술을 많이 먹은 내가 걱정된다며 다른 집에 배달을 가다 콩나물해장국을 사들고 왔다. 남편의 그런 행동이 너무 놀랍고 고작 그 정도에 감동받은 내가 등신 같아서 울기도 했다. 이까짓 5000원짜리 해장국 한 그릇이 뭐라고 이런 거 한번 안 챙겨주고 산 남편이나 챙겨 받지도 못한 나나 둘 다 등신 같았고 그런 내 인생에 자존심이 상했었다.


22년 12월에 첫 수술을 마치고 기적 같은 모습으로 회복해 정상인과 같은 삶을 이어 나갔던 23년 1월부터 7월까지 그는 매일같이 요리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간식, 특식, 야식까지 아이들과 나는 그의 요리를 잔뜩 먹었다. 예쁜 그릇에 사 먹는 것처럼 플레이팅 한 후 근처에 계시는 큰 시어머니와 시어머니, 나머지 가족들도 자주 초대해 요리를 해드렸다.


"나 살림이 너무 재밌어. 네가 돈을 벌고 내가 집에서 살림을 했었어야 했나 봐"


남편은 나와 아이들 그리고 가족들을 오롯이 챙기던 그 6개월을 정말 행복해했다. 남편은 그 기간 동안 만능양념장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쟁겨놓았는데 그 양념장은 해물, 육류 모두 잘 어울려 주꾸미에 섞어도, 오징어에 섞어도, 불고기 만들어도, 닭고기에 양념을 해도 놀랍도록 맛있었다. 다 먹으면 아쉬워 남편에게 다시 만들어 놓으라고 했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남편의 병세가 악화되고 병원생활을 전전하다 장례식까지 모두 마친 후 지친 나는 그 양념장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남편이 하늘을 간 지 한 달 여가 지난 즈음, 아이들에게 저녁 반찬으로 돼지불고기를 해주기 위해 레시피를 검색했다. 이것저것 넣었는데도 맛이 영 심심하고 고기는 뻑뻑했다. 무얼 더 넣어야 하는지 냉장고를 뒤적이다 남편이 만들어두었던 양념장이 나왔다.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양념을 푹 떠 고기에 버무려 구웠다.


남편의 손맛이었다. 양념장을 더 넣으면 더 맛있었겠지만 아까워서 더 넣지 못했다. 조금 싱거워도 남아있는 양념을 아껴먹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다. 고기를 입에 물고 "여보... 여보..." 중얼거리며 눈물이 났다. '이 양념장 아까워서 어떻게 먹니.. 이거 먹으면 그땐 어떡하지?'

먹기도 전에 걱정부터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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